남해 바래길을 가다 [7]구운몽길(9코스)
남해 바래길을 가다 [7]구운몽길(9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6.30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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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온 선비도, 고향 떠난 사람들도 남해바다가 있어 외롭지 않다
구운몽길 상주은모래비치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는 관광객들
소설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를 바라보며 걷는 구간이 많아 ‘구운몽길’이라고 부른다.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에서 출발해 걷다보면 두모마을 앞에서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와 있는 노도를 볼 수 있다. 노도문학의 섬이라는 별칭 있는 이곳에는 서포문학관, 작가창작실이 자리하고 있다.

노도가 시야에서 벗어날 즈음에는 상주은모래비치와 천하몽돌해변이 나타난다. 남해 최고의 상주은모래비치는 그야말로 품격이 있다. 발밑에 밟히는 모래는 입자가 작아 부드러운 스펀지 같은 느낌이 들고 얕은 바다가 상당히 먼 거리까지 펼쳐져 있어 안전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날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으나 밀려오는 파도는 너무 과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세기여서 파도에 아무렇게나 몸을 떠맡겨도 될 정도였다.

백사장 면적 54만 4500㎡, 길이 2㎞에 달하는 경승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이 코스에는 또 수천 년 전 인위적으로 새긴 것으로 보이는 ‘서불과차’라는 신비한 석각이 있고, 400년 전 멀리 경기도에서 따뜻한 남쪽을 찾아 온 사람들이 정착한 양아리 소량·대량마을 집성촌도 볼 수 있다. 금산과 상주리 사이의 계곡에 있는 음성굴 쌍홍문도 볼거리다.

구름 위를 걷는 듯 한 꿈결 같은 길이 등장하는가 하면 원시림처럼 어두운 구간을 지나기도 한다. 원시림에선 빈틈으로 찬란하게 쏟아지는 태초의 빛내림을 목격할 수도 있다. 장마로 인해 궂은 날씨가 계속되면서 취재팀 중 일원은 일부구간에 대해 산악자전거를 타고 주행하기도 했다.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연못
▲남해 바래길 9코스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앵강다숲마을)출발, 원촌마을→벽련마을→두모마을→소량마을→대량마을→상주은모래비치→금포마을→천하마을.
총길이 17.6㎞, 6시간 소요.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에서 나와 연꽃테마공원 사이를 지나 돌아 나간다. 키가 훌쩍 커버린 갈대숲이 연못을 뒤덮고 있다. 고라니인지 수달인지 모를 큰 짐승이 인기척에 놀라 뛰어 달아났다. 실상 외려 더 놀란 건 취재팀이었다.

곧바로 나타나는 신천앵강다숲 속에는 가족 혹은 친구끼리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조성돼 있다. 코로나19로 주춤했지만 캠핑이 대세인 요즘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서울서 휴양차 왔다’는 관광객이 갯벌에서 무엇인가 줍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게를 잡고 있었다. 크기가 엄지손톱만한 것들인데 반찬을 해먹을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햇살을 받은 얼굴이 하얗고 밝은데다 친절하기까지 해 기분을 좋게 했다.

앵강다숲 텐트촌
앵강다숲 텐트촌

남해자동차 전문운전학원을 지나고 곧이어 원천마을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일행은 백련마을까지 자전거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부터는 산허리를 돌아가야 하는 산길이 나타나 자전거는 그야말로 짐짝이 됐다. 이른바 끌바(끌고 가는 바이크), 밀바, 멜바의 연속이었다.
 

원천숲


잠깐이면 자전거길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깨졌다. 산악용 자전거임에도 자전거를 탈수 있는 구간은 절대적으로 없었다.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길은 계속 산길이었다. 안개까지 내려앉은 후텁지근한 날씨에 포털 GPS도 오작동을 일으켰다. 걷고 있는 길 외에 자전거 통행이 가능한 임도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바람에 길을 한참동안 벗어났다가 되돌아와야 했다.

정강이와 허벅지는 풀에 쓸려 핏물이 고였다. 때늦은 후회, 바래길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고통을 감내한지 40여분, 양지밭들을 지나 두모마을로 내려섰다.

두모마을에서 김만중의 노도가 가장 가깝게 보인다. 그는 노도에서 구운몽(九雲夢)을 쓰지 않았다. 당나라 때 인도에서 온 육관대사(六觀大師) 제자인 성진(性眞)이 양소유로 환생해 여덟 선녀의 환신인 8명의 여인과 연을 맺고 세상에 이름을 떨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깨어 보니 꿈이었다는 내용이다. ‘구운몽’에서 구(九)는 성진과 팔선녀를, 운(雲)은 인간의 삶을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름에 비유한 것이다. 아홉 구름의 꿈, 아홉 사람이 꾼 꿈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의 부귀영화가 한낱 꿈이라는 얘기다.

양아리 소량·대량마을을 잇따라 지난다. 이 마을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경기도 임진강가에도 양아리가 있는데 약 400년 전 이곳 주민들이 따뜻한 남해로 이주해오면서 양아리라는 지명을 그대로 썼다. 본향을 그리워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지명에 배어난 것이다. 1953년 양아리에서 분리된 작은 마을이 소량, 큰 마을은 대량이다.

협동심이 강한 양아리 주민들은 가뭄이 들면 마을 제일 높은 천황산 상봉에 불을 피워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1991년 범죄 없는 마을, 2006년 담배연기 없는 마을 등 일찌감치 선진적인 마을로 이름이 났다.

 
서복일행이 새겼다고 전해지는 서불과차 석각


또 이곳에는 남해 양아리 석각(石刻)이 유명하다. 도 기념물 제6호인 석각은 두모마을 뒷산 금산 부소암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특이한 그림문자이다. 전하는 말. 방사(方士)‘서불’이 중국 시황제 명을 받아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수천명을 데리고 남해 금산에 당도했다. 불로초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았던 서불은 더 이상 미련을 두지않고 그냥 놀다가 이 석각을 새긴 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단다. 반론도 있다. 시황제 때는 이미 한자가 사용됐기에 그 이전의 고문자(古文字)라는 것이다. 아직 무슨 뜻인지 해독되지 않고 있다. 마을을 지날 때 담장에 비슷하게 만들어 새긴 석각을 볼 수 있다.

대량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임도를 타고 산으로 올라간다.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대량마을에서 상주로를 타고 중간에 길지 않은 산길만 끌바하면 상주은모래비치까지 곧장 갈 수 있다. 바래길은 이 상주로를 기준으로 산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는 셈이다.



 
산으로 간 바이크
상주은모래비치는 남해에서 가장 돋보이는 해수욕장이다. 금산이라는 걸출한 명산이 병풍처럼 울을 만들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고운모래와 더위를 막아주는 아늑한 송림이 피서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맨발에 닿는 모래의 감촉이 좋아 해마다 여름이면 100만명에 달하는 여행객들이 찾아온다. 지역에서 만난 한 주민은 “코로나가 수그러든 올해는 더 많은 피서객이 오지 않을까…”라면서 기대하는 눈치였다.

은모래비치 입구에 ‘밤배’ 노래비가 서 있다. /검은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 봐 한없이 흘러가네/밤하늘 잔별들이 아롱져 비칠 때면/작은 노를 저어 저어 은하수 건너가네/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어디서 어디서 잠이 들텐가…’

잘 알려진 대로 ‘밤배’는 가수 ‘둘 다섯’의 대표곡.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가 압권이다. 이두진의 성을 따 ‘둘’, 오세복(2021 작고)의 성을 따 ‘다섯’을 합해 ‘둘 다섯’이라고 명명했다. 당초 오세복 작사·작곡으로 알려졌지만 2005년께 이두진이 “사실은 자신이 썼다”고 고백했다. 그는 1973년 대학생 시절, 금산 보리암에 묵게됐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본 상주해수욕장, 가녀린 불빛을 달고 거친 바다를 건너는 조각배의 풍경에 감흥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사는 무명의 음악선생님이 쓴 것이라고도 했다. 이후 남해에서는 상주에 이러한 사연을 담은 노래비를 세웠다.

초승달 같은 상주비치를 뒤로 하고 고개를 넘어간다. 크고 작은 몽돌이 깔려 있는 천하 몽돌해수욕장은 깨끗함이 상징이다. 배가 없는데다 오염원이 적기 때문. 금산 골골에서 모인 물이 바다와 만나 깨끗함이 상승효과를 낸다. 도로변에서 보이지 않아 아는 사람만 찾는 보석같은 조용한 해변이다. 1년 중 한 번, 즉 7월 말부터 한 달간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면서 먼 바다에서 모래를 끌고 들어와 몽돌해변 일부를 덮어 몽돌백사장이 형성되는 때가 있단다. 구운몽길은 이 천하몽돌밭에서 끝난다.

김윤관기자

 
구운몽길에서 만나는 상주은모래비치의 풍경, 경상국립대학교 학생들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이 게를 잡고 있는 모습.
소라껍데기
붉게 익은 산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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