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97)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97)
  • 경남일보
  • 승인 2022.06.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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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50년만의 축의금과 김정자 교수 그리고 신작시집(3)
우체통을 지나던 그 여학생에게 당일 오후 7시 교문 옆 세 번째 전봇대 옆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 남학생(성유정)은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아갔다. 그 뒤 남학생은 허탈한 나머지 학교에서 일인 교사를 지목한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는 유도 퇴학을 당하고 이어 일본 유학길에 올라 철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소설가로 성장한다. 소설가는 일간 신문 동정란에 올릴 정도로 유명해 진다. 어느날 소설가는 극피로로 병원에 입원하며 쉬고 있다는 동정이 알려지자 한 여학생이 꽃다발을 안고 병실을 찾는다. 여학생의 꽃다발에 곁들여지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실로 35년만에 드리는 답장입니다. 그날 저는 못나갔고요 학교를 졸업한 후 부족함이 없는 결혼을 했고 딸애 하나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전한 여학생이 그 딸애입니다. 저의 뜻으로는 이 딸애가 다닐 수 있는 야간의 한 작은 직장을 선생님께서 마련해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짧은 메시지의 긴 여운을 주는 글이었다.

그 딸애는 35년 전 그 우체통 옆으로 스치던 여학생의 그 모습이었다. 그 딸애와 눈을 마주칠 때 눈동자에는 특유의 이슬빛 영롱함이 살아나고 있었다.

이 이병주의 소설은 낭만적 색채가 짙은 것이었다. 이 소설 말고도 <마술사> <관부연락선> 등도 낭만적 색감으로 뒤감겨 있음은 물론이다. 필자는 교양국어 소설편을 가르칠 때 학병소설 <마술사>를 즐겨 선택하여 그 활동의 광역성과 역사의식 그리고 낭만적 색채에 대해 설명하곤 했었다. 그러므로 35년만의 답장, 학병과 노예적 체험 등에 대한 각인과 함께 시간을 빌어 표현하고자 하는 의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김 교수님의 소설 특강이라는 말에 그냥 자연스레 <50년만의 축의금>이 뒤따라 나온 것이었다.

필자는 그 무렵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김동리 소설가가 창간한 <월간문학>의 편집인으로 문예지 개혁의 고삐를 잡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 목동을 오르내리며 문단지가 가는 길, 그 몫에 대해 불철주야 사색하며 토론하며 필자를 선별했다. 그때 필자가 개발한 코너에 <목동 살롱>이 있었다. 한국문단 이면사라 할까 에피소드라 할까 원고지 15매 수준의 원고로 담당했을 때 2회에 걸쳐 집필하는 것이었다. 물론 문단의 중견 이상이 쓰는 칼럼이었다.

필자는 이 난에 원고청탁을 하기 전에 전화로 이런 성질의 코너가 있는데 “김 교수님께서 집필해 주실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고 저는 문단에 아는 사람도 없고 문단적 분위기도 모르고 사는 사람인데 그런 글을 쓸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뒤 일주일 지난 후에 “한 번 써보겠어요.”하고 응답이 왔다. 편집회의에서 차기 목동살롱 작가(시인)에 시인 겸 소설가 김정자 교수로 정해졌다.

첫 번째 원고는 청마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써주었다. 김 교수의 이야기는 교사 초년생으로 발령된 학교(부산의 N여상고) 교무실에서 벌어지는 일화들로 기억된다. 그 학교 교장은 청마 유치환으로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아마도 당시 김 교수는 교사 초년생으로서의 교단이 스스로의 이상에 맞지 않아 교사간 교육 지침간 갈등이 잦았던 것 같았다. 때로는 그 갈등이 언어로 노출되기도 하여 분에 젖은 김 교사는 울음을 보이기도 했음을 밝혔다. 그때 학교의 교장실이 교무실에 가까이 붙어 있는 까닭에 깃발의 시인 청마는 스르르 문을 열고 “왜 이리 시끄럽지요?”하고 교무실 광경을 보고는 “참 젊음이 좋긴 좋은 것이군요. 아름다운 울음이 생애를 달구고 있으니!” 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모른 척했다.

이때 김 교사는 교장 선생의 저 금도 높은 시정신으로 산만해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때 김 교사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음을 느꼈을까?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탈자의 손수건”이 스쳐 지나갔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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