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96)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96)
  • 경남일보
  • 승인 2022.06.2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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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50년만의 축의금과 김정자 교수 그리고 신작시집(2)
김정자 교수의 한국소설 특강은 2시간이나 이어지는 본격 전문 교수의 강의였다. 시작하기 전에 민속무용과 조교의 사회로 “오늘 특강에 앞서 저희 전 인문대학 학장이신 강희근 교수님의 축사 말씀이 있겠습니다”하고 소개했다.

필자는 아직 인사도 건네지 않은 특강 교수를 앞자리에 모신 채 먼저 나가 축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는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자리이고, 학과 학생들에게는 명 강의를 듣는 자리이고, 진주문인협회 회원 여러분께는 좀처럼 모시기 힘든 외부 명강사를 맞대면하는 자리로서 의미가 깊은 자리가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가 저 개인적으로 봐서는 인생 흐름의 길목에 세워진 한 표지판을 지나가는 순간이 됩니다. 오늘 저는 특강에 초청되신 김 교수님에게 먼저 ‘50년 만에 드리는 결혼 축의금’ 봉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하고 봉투 이야기를 꺼냈다.

50년 전 신춘문예 당선되던 해인지 그 다음 해인지 오락가락하지만 그날 아침 인사차 스승댁으로 갔는데 스승께서 두루마기를 입고 계셨다. 무조건 따라간 곳은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있었던 부산의 J시인의 결혼식장이었다. 식장은 4각으로 식당 자리를 40, 50개 만들어진 것이었고 정면 쪽에 주례에 이어 신랑과 신부가 앉아 있었다. 주례는 스승이었고 신랑은 J시인, 신부는 국립사대를 갓 나온 규수였다.

주례사는 지난번에 이미 소개했고 식이 끝나갈 무렵 주례 스승은 필자를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신랑은 이미 대충은 아는 시인이었고 신부는 한복으로 신부복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순간 신부가 무엇인가가 될 분으로 보였을 뿐만 아니라 필자의 신춘 당선에 관심을 보이는 문청이 확실해 보였다. 필자는 그날 축의금을 못내는 형편에 풀코스 음식들이 점점 부담스러웠다. 그 이후 필자는 결혼식에 가거나 주례를 서거나 간에 스승, 신랑, 신부 등 3각의 액자가 표준형으로 다가와 결례, 부담, 숙녀 등에 대한 이미지에 예속되었다.

필자가 축의금을 50년 만에 전달하고자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이병주의 단편 ‘35년만의 답장’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이병주가 경상대학교 총학생회 초청으로 1980년대 초반 칠암 캠퍼스에서 강연을 할 때 학생 간부들이 필자를 보고 작가의 경력을 좀 소개해 달라고 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작가에게 ‘35년만의 답장’이 있음을 소개했다. 이 단편 줄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C시(진주시 가상)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남자 주인공이 아침 등굣길에서 만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우체통 옆을 지나칠 때의 눈빛은 이슬처럼 영롱했다. 그날 남학생은 눈빛 여학생을 떠올리며 작은 집에 가서 4촌 여동생을 만났다. “아이 너그 여학교엔 운동장에 호박이 우글거린다는 소문이 났어야”라고 운을 떼자 여동생은 “오빠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리 학교엔 코가 예쁜 사람, 눈이 예쁜 사람, 허리가 예쁜 사람, 스타일이 빼어난 사람 등등 미인 키우는 동산이야”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남학생은 “눈이 예쁜 사람 이름이 누군데?”하고 은근히 우체통 지나가는 여학생을 지목하고 물었다.

여학생을 알아낸 그는 아버지가 입는 당쿠 바지를 입고 스틱을 짚고 그 여학생 집에서 편지를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교문 수위에게 눈빛 여학생 이름을 대었다. 여자를 만나는 데는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편지 받으러 나온 여학생에게 편지를 주고 뛰어 나왔다. 편지는 “눈빛이 빛나는 분, 우체통 옆에서 편지처럼 설레는 분! 그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오늘 밤 7시, 교문에서 세 번째 전봇대 옆에서 뵐까 합니다. 꽃 한 송이 피우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성유정 올림.”

그날 밤 7시가 지나고 1시간 2시간, 3시간, 시간은 초침처럼 지나갔다.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은 점점 어둠에 묻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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