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77)연호를 지나다 (유종인)
강재남의 포엠산책 (77)연호를 지나다 (유종인)
  • 경남일보
  • 승인 2022.06.1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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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다 거기 가서 여름을 사나보다
수런대는 연잎서껀 꽃잎을 바치다가
혹서의 수척한 새떼에
곁두리로 연밥 낸다


바람은 다 거기 모여 오지랖을 얻나보다
빠질까 멈칫하는 부리 붉은 물닭에게
오너라, 내 받아줄꾸마
연잎 마당 펼친다


적막은 다 거기 스며 마음 하나 여나보다
연꽃 아래 스쳐가는 유혈목이 등살에도
소름을 잠재운 물살이
물거울을 불러낸다

 

초록이 부풀어 오르는 산을 봅니다. 능소화와 물봉숭아를 곧 만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끓습니다. 모든 계절이 다 거기 가서 살기에 여름은 높고 아름답고 다정할 것입니다. 그런 여름은 자신의 영역을 허물며 휘황하게 우리 곁에 올 테지요. 여름의 형식을 무참히 깨며 여름에 사는 모든 계절을 데리고요. 묘하게 위태롭거나 매력적인 그런 여름을 기다립니다. 이즈음 연잎에 이슬이 굴러다니는 것을 자주 봅니다. 펼친 연잎이 작은 연못을 채운 걸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꽃이 필 땐 고고하면서 단호한 향을 즐길 수 있겠지요. 장마가 오고 약속되지 않은 소나기가 쏟아지면 여름은 계절 복판으로 들어설 테고요. 바람은 다 거기 모여 오지랖을 얻고 유혈목이 어금니에 독이 가득해도 적막이 거기 다 스며있기에 소름을 잠재울 수 있는 거겠지요. 그러다가 독한 더위에 수척해진 새떼에게 연밥을 내어줄 요량으로 꽃은 지겠지요. 비로소 잔잔해진 여름은 완벽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연밭이 있는 호수를 보면서 자연이 내는 기척에 오감을 열어둔 화자의 고요함에 동화되는군요. 가장 진흙에서 가장 잊히지 않은 향기를 품은 꽃의 신비함. 이렇게나 온통 여름이어서 정말이지 온통 연꽃이어서 가볍게 일렁이는 물살이 물거울이 되는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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