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을 가다[5]다랭이지겟길(11코스)
남해 바래길을 가다[5]다랭이지겟길(11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6.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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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바다 위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
짙푸른 바다에 뜬 소죽도와 죽도가 손에 잡힐듯 하다. 그 뒤로 대형 컨테이너선이 쉼없이 오가고 여수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다랭이지겟길은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가천 다랭이마을을 품고 있다. 이 마을이 유명세를 타는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억척같은 삶을 일궜던 선인들의 생활상을 반추해볼 수 있는 유산, 혹은 그 터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도 선착장도 없다. 마을이 위치한 곳이 땅끝 벼랑이기 때문. 하는 수없이 사람들은 해안 절벽을 깎고 그 깎은 돌로 담을 쌓아 논을 쳐 농사를 짓고 살았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은 다랭이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당시 사람들이 산나물 채집이나 토끼 노루 수렵을 위해 오르내렸을 설흘산(481m) 응봉산(471m)은 험하기가 그지없는데 지금에 와서는 험악한 만큼 더 아름답다고 한다. 시절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마을 앞으로는 검푸른 대양이 한눈에 조망된다.

바다 건너 여수산단조성으로 인한 해양생태계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청정지역으로 바다 속이 훤히 보인다. 간첩이 해안을 들락거리던 1970년대, 지역사회에 경각심을 고조시켰던 빛바랜 해안초소도 보인다. 빛담촌 너럭바위에 새겨진 용발자국에 얽힌 사연, 가천 다랭이마을의 암수바위 사연들이 구슬처럼 꿰어 있다. 바래길 옆 모롱이에 버티고 선 산돌배나무와 비파열매, 오디와 산딸기는 꿈속처럼 아련한 유년시절을 소환한다.

바래길 취재팀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11코스 다랭이지겟길로 간다. 배와 바다보다 정작 다랭이논과 산이 먼저였기에 바래길이지만 ‘다랭이지겟길’이다.

 
다랭이논
▲남해 바래길 11코스

평산마을 작은미술관 출발→유구범머리 전망좋은 곳 (녹지기마을)→유구진달래 군락지→사촌해수욕장→선구몽돌해변→향촌 가천다랭이마을 암수바위→가천다랭이마을 바다정자 도착

총길이 13.5㎞/4시간 30분∼5시간 소요



▲오전 9시 18분, 출발지 ‘평산항 작은미술관’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작은미술관에는 박양선·김윤희 화백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언덕엘 올라 해안선 옆길을 따른다.

짙푸른 바다에 뜬 소죽도와 죽도가 손에 잡힐듯 가깝다. 그 뒤로 대형 컨테이너선이 쉼없이 오가고 여수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해안가 언덕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펜션들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집들은 아예 이태리풍으로 만든 것도 있고 정원이 아름다운 유럽풍으로 조성한 것도 있다. 마치 다국적 건축물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한결같은 사랑과 정성으로 저희를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셔주세요 사랑합니다’ 어느 펜션에 붙어 있는 환갑을 축하한다는 알림글이다. 가족끼리 어머니를 모시고 환갑잔치 겸 여행을 온 것으로 보였다.

출발 후 1시간 남짓, 전복양식장 옆을 지난다. 고급 해산물인 전복은 대개 바다에 가두리양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남해에서는 바다가 아닌 육지에 양식장을 설치해놓고 바닷물을 끌어와 전복을 길러낸다. 배를 이용해 연안까지 오가는 불편과 비용을 줄여 원가를 절감하는데 바다양식장에서 키운 것과 품질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해안초소


출발 1시간 20분께 을씨년스러운 해안초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은 거의 쓸모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꽤나 자주 유용하게 사용했던 시설이다. 1970년대 북한 간첩들이 해안으로 들락거려 골머리를 앓았던 군 당국은 수시로 예비군과 현역을 소환해 이곳에서 보초를 서게했다. 보고 배운 게 그런 거였던 동네아이들은 칼싸움에 능했고, 전쟁놀이에 해지는 줄도 모르고 뛰놀았다.

길은 사촌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백색의 깨끗한 모래해수욕장이 송림과 어울려 있다. 숲에는 평상이 있어 여름철 향락객들이 많이 찾는 남해에서 몇 안 되는 명품 유원지에 속한다. 사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이곳은 남해인들보다 여수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 지리적으로 남해읍과 멀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져 오히려 여수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서 해수욕을 즐겼다한다.



 
비파나무열매


사촌마을에는 해수욕장 외에도 멀구슬나무가 자란다. 먹구슬, 목구슬로도 불리는 이 나무의 꽃은 향기가 좋다. 꽃이 지면 열매가 달리는데 가을에 노랗게 익고 겨울에는 구슬처럼 변해 먹구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큰 나무는 보기가 드문데 이곳에는 마을 정자목으로 대형이다. 또 다른 보호수 팽나무(수령 390년)는 사촌과 선구리를 가르는 산등성이에 있다. 오래 전 마을에 호열자(콜레라)가 닥칠 때 이 나무신이 전염병을 내쫓았다는 전설이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유산인 ‘선구줄끗기’를 할때 이 나무에서 제사 지낸 뒤 출발한다. 팽나무는 7그루의 졸개나무를 거느리고 있다.



 
사촌마을과 고동산
사촌해수욕장


산등성이에서 뒤돌아보면 사촌마을 뒷산은 바다고둥처럼 생겨 고동산(359m)이다. 고동산 기슭 섬이정원은 점처럼 작게 보인다. 한려해상공원의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섬이정은 오래된 돌담과 연못, 생울타리에 다양한 초본과 억새들로 조성한 유럽식 정원이다. 오른쪽 진행방향은 응봉산, 더 진행하면 설흘산이다.



 
선구마을(왼쪽)과 향촌마을(오른쪽) 사이 깨자갈 몽돌해안
선구리 팽나무


정오 지나 언덕을 돌아 넘어가면 깨자갈몽돌이 있는 선구마을에 닿는다. 향촌마을까지 이어지는 해안에는 거제 몽돌해수욕장의 몽돌과 비슷한 깨자갈이 톱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도 거제처럼 몽돌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지 ‘몽돌채취금지’ 팻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빛담촌’은 바래길에서 응봉산 쪽으로 올라와 남해 일주도로(1024번)변에 있다. 남해 독일마을이 유명해지자 군에서는 일본마을을 계획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펜션촌으로 궤도수정했다. 고급펜션이 즐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빛담촌 상징조형물 용


빛담촌 위 응봉산 ‘용발때죽’(용발자국)사연은 지고지순한 남녀의 사랑을 전한다. 이 마을에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여인이 살았는데 어느 날 응봉산에 터를 잡은 용 한마리가 이에 반해 빨래 하러 온 이 여인을 낚아채 산으로 올라가버렸다. 그런데 평소 여인을 흠모했던 총각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낙심한 나머지 상사병이 걸려 시름시름 앓았다. 죽기 직 전 이 총각은 이판 사판 심정으로 여인을 구하기위해 나섰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을 힘을 다해 산으로 기어오른 총각은 용의 눈을 피해 여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용이란 녀석이 이 총각의 가상함을 알아차렸는지 어쨌는지 그냥 데려가게 내버려뒀다고 한다. 이때 남긴 용발때죽이 지금도 찍혀 있는데, 남녀가 사랑을 이루려면 이 용발때죽에 찾아오면된다고 한다.

뜨거운 초여름날 띄약볕 아래, 몽돌해수욕장을 지날 때면 얼굴이 몽돌만큼 달궈지고 사촌을 지날 때면 발바닥이 간지럽다. 빛담촌을 떠난 바래길은 어느새 울창한 숲 터널로 들어간다. 경사가 큰 마지막 오름길은 숨이 차오른다. 거친 숨에 대한 보상은 산을 내려와 다랭이마을 어귀에서 받을 수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바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이 시원해진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책로와 전망대가 있어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산과 바다, 그 사이 남해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억측같이 일궈놓은 삿갓배미 다랭이논이 언덕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삿갓배미는 워낙 좁은 벼랑에 논을 치면서 너무 작게 만들어져 삿갓으로 덮으면 안보일 정도여서 그렇게 불렀다. 다랭이마을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해안가와 정자 등을 돌아보는 데 30분정도 걸린다. 뜨거운 태양 아래 오후 2시가 못돼 다랭이지겟길을 떠날 수 있었다.

김윤관기자

 
 
 
산돌배
가천 다랭이마을
다랭이논과 해안
암수바위의 암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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