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38] 쿡아일랜드(3편)
도용복의 세계여행[38] 쿡아일랜드(3편)
  • 경남일보
  • 승인 2021.08.1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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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늦게 살아가는 나라 쿡아일랜드, 뿌까뿌까섬 합창단을 만나다.
 
뿌까뿌까섬의 대통령
도착한지 1박 2일 만에 마치 현지인이 된 것 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쿡아일랜드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데비’를 따라 커뮤니티센터로 갔다. 커뮤니티센터는 쿡제도에 흩어져 있는 각각의 섬에서 온 주민들이 만나 서로 문화교류를 하는 곳이었다. ‘커뮤니티데이’에는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특별한 자리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이었다. 일본인 교수의 회색 차량에 몸을 싣고 공항 반대편 외곽 쪽으로 갔다. 입구에 쿡아일랜드 ‘칼리지’가 있었다. 대학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았지만 이곳의 고등교육기관이었다. 자치권이 인정되는 국가이기에 학교를 졸업하면 뉴질랜드 등에서 활약할 수 있으리라.

대학로를 따라 들어가자 왼쪽에 사각 혹은 원형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건물 하나하나가 각 섬들을 대표하는 커뮤니티센터라고 했다. 다른 섬의 커뮤니티센터와 서로 경쟁하듯 건립되면서 모두 크고 멋이 있었다.

파란색 건물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건물 뒤에는 3층짜리 빌라형 집이 숨어 있었다. 호스텔처럼 쓸 수 있는 곳 같아서 “숙박이 가능 하냐”고 물었더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권유했다. 가리킨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는 대답 대신 놀랍게도 “뿌까뿌까 대통령”이라고 했다 “대통령이요?”, “네 쿡 아일랜드는 각 섬마다 대표자가 한명씩 있고 각 섬에서 저 같은 이들을 대통령이라고 불러요”, 라고 했다. “아 정말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뿌까뿌까 대통령 일행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 내가 관여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제합창제에 초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먼 오세아니아 쿡아일랜드 라로통가에서 한국으로 초대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시간과 비용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삼킬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때 우리를 태워준 일본인 교수가 “집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돌아가죠, 대통령님, 행복한 시간 되세요” 그렇게 그들과 작별했다.

건물주를 찾아 이곳에서 호스텔처럼 묵을 수도 있는지 물었다. 그는 가능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연말이라 빈방이 없다고 했다. 여기 대부분의 커뮤니티센터는 섬에서 사람들이 왔을 때 재워드리고 보수를 받는다고 했다. 현지인도 잘 몰랐을 법한 커뮤니티센터의 역할이었다. 우리로 치면 동사무소에서 사람들을 재울 수 있는데,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재워준다는 뜻이었다. 비용은 하루 20NZD(한화 약 16000원)이었다. 대충 둘러보니 꽤 깔끔하게 잘 정돈된 방이었는데 저렴하기까지 했다. 발품 팔지 않으면 알수 없는 정보였다. 나는 “내일 떠나지만 다음에 오는 한국인 여행자들께는 이 정보를 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곳 섬사람들은 유흥이나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아 여가시간에 할 게 많지 않아보였다. 자연 속에서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음식을 조리해 먹거나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게 유기농이고 건강식이다. 자연 속에서 노동을 하니 남녀 모두 운동을 하지 않아도 신체근육이 발달해 있었다.

 
쿡아일랜드 뿌까뿌까 커뮤니티센터
새로운 곳, 새로운 경험은 나이를 잊게 한다. 시간도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 4시간만 자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습관은 이곳에서도 그대로였다. 여행 중 몸이 녹초가 돼도 늦잠을 자는 건 어려운 일이다. 떠나기 전 데비에게 감사표시를 하기 위해 숙박비 30NZD(한화 약 24000원)를 따로 챙겨두었다.

자연의 소리가 들렸다. 바람소리 새소리…, 평온한 새벽, 아무도 방해하는 이가 없는 아침, 잠시 사색에 잠겼다. 여행 시작은 아직 얼마 안됐지만,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늘 생각한다. 다리 떨릴 때는 늦다, 가슴 떨릴 때 떠나야지. 지금 가슴 떨리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앞으로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고국에서 스마트폰 카카오톡으로 물어오는 새해 안부들이 많았다. 답장을 하고 소중한 분들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시간도 소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갓 아침 해가 고개를 내밀 때인데, 아침 일찍 온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치안상황이 좋다고 들었는데 덜컥 겁이 났다. 조직적으로 나의 것을 빼앗으려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데비와 건장한 남자들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나는 경계심이 풀렸다. 190㎝정도의 잘 생긴 청년과 나와 키는 비슷하지만 근육질의 청년이 둘이 있었다. 둘 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나이를 가늠키 어려웠다. 데비가 “손자”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정중하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했다. 친숙한 한국어에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인터넷으로 공부했다”고 했다.

이제 떠나야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데비 정말 고마워요. 대가도 없이 낯선 이방인에게 잠자리를 내어주어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준비한 여비를 건넸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재차 건네는 바람에 거절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고맙다”면서 받았다. 그는 “당신을 잊지 못 할 겁니다”라고 했다. “데비, 저도 훗날 쿡아일랜드를 생각하면 당신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겁니다”라고 화답했다. 그렇게 훈훈한 대화가 오갔다. 데비의 손주들은 각각 이스라엘과 호주에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들이고 앞으로 이곳에 터전을 잡을 계획이라고 했다.

식사 후, 떠나게 될 쿡아일랜드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다. 레비의 손주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체크인 후 비행기 탑승권을 받기위해 에어라인 부스로 갔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매표직원은 “도용복은 예약자 명단에 없다”고 했다. 더 기가 찬 것은 “쿡아일랜드-타히티행 비행일정 자체가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나는 이미 탑승권 비용을 지불했고 1월 1일 쿡아일랜드에서 출발해 같은 날 오후 타히티에 가야하는데 말이다. 앞이 캄캄해지고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무리 섬나라 사람들이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행시간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게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지고 흥분됐다. 매표 승무원에게 예약이 확정된 이메일을 보여주며 오늘 예약자인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런데 매표직원은 빙그레 웃으며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보여주신 날짜는 내일입니다”라고 했다. “네∼에, 무슨 말씀이세요?” 알고 보니 쿡아일랜드는 주변 섬나라보다 시간이 하루가 늦게 가는 것이었다. ‘날짜 변경선’ 바로 왼쪽에 위치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키리바시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쿡아일랜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데비의 가족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는데 그렇게 의도치 않은 하루가 더 생겼다.

실제 쿡아일랜드는 오세아니아의 다른 나라들과 시차가 있어 하루가 늦게 간다. 때문에 갑자기 생긴 숙소 변동으로 잘 곳이 없어 게스트하우스를 찾을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숙소에 매트리스 하나를 내어주며 자라고 했다. 어쩌다보니 1월 1일을 2번이나 맞게 됐는데, 신년을 맞이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여명이 틀때까지 계속됐다.

 
공항의 에어타이티 측에서 쿡아일랜드는 날짜 변경선 바로 옆에 있어 하루가 이르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센터 사람들과 친해져 기념촬영을 했다.
쿡아일랜드 뿌까뿌까섬의 대통령과 함께
쿡아일랜드 주민들과 대통령이 토론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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