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53)6년만에 다시 오른 하얀 산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53)6년만에 다시 오른 하얀 산
  • 경남일보
  • 승인 2020.12.30 1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막막한 설산에 소주 한 잔…‘영영 이별’

2010년 마나슬루 등정서 열손가락 모두 잃은 강연룡
당시 실종된 ‘자일 파티’ 윤치원 찾아 다시 그 산에…
셰르파까지 나선 수색에도 끝내 마음에만 품고 돌아서
 
강연룡 대원이 7200m 설사면에서 윤치원을 수색하고 있다


“눈 속에 한 송이 에델바이스로 핀 윤치원.
그는 지금 ‘영혼의 산’ 마나슬루에 피어 있습니다.
그가 우리와 헤어진 지 2000일이 지났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를 잊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우리는 이제 그를 만나러 마나슬루로 향합니다.”-취지문

 

 
2016년 뜻깊은 원정대가 꾸려졌다. 2010년 마나슬루 원정에서 후배를 끝까지 지키다 실종된 윤치원을 찾기 위한 것으로 이상호 대장·김재수 부대장·박명환·강연룡·정다솜 5명이 참여했다.

강연룡은 2010년 탈진한 후배를 위해 장갑을 벗어주며 보살폈다. 자신은 동상에 걸려 손가락 10개를 잃었다. 강연룡은 당시 자신을 내려보내고 죽어가는 후배를 위해 남았다가 행방불명된 윤치원을 찾기 위해 원정에 참여했다.

강연룡과 윤치원은 1999년 가셔브롬4봉(7925m) 북서릉 세계2등, 2000년 K2(8611m) 남남동릉 한국 초등, 2004년 로체남벽(8516m) 등반, 2009년 마칼루(8463m) 등정, 2010년 마나슬루를 등반한 자일 파티였다.

동상 후유증으로 6년간 재활한 강연룡은 마나슬루에서 윤치원을 찾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산악인들은 ‘자신보다 항상 남을 위해 산을 올랐고, 위험에 빠진 대원들을 내려보내고 혼자 남아 후배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확인한 휴머니스트 윤치원’을 찾는 원정대에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6년 8월 18일 김해에서 열린 발대식에는 수많은 산악인이 참석해 장도를 축하했다.

 
해발 6600미터에 위치한 2캠프.
강연룡, 네팔 이모·현지인과 ‘눈물의 포옹’

8월 26일 원정대는 네팔 카트만두로 향했다. KE695편은 7시간의 비행 끝에 카트만두 상공에 떠 있었다. 카트만두를 가로지르는 크고 작은 하천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내 옆에 앉은 강연룡은 말했다. “6년 만에 왔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네.”

8월 28일 원정 대행사인 세븐서미트 대표 밍마가 원정대를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 장소는 산악인들에게 잘 알려진 비원(대표 윤기자)이었다. 윤기자씨는 산악인들에게 ‘카트만두의 어머니이자 이모’였다. 그녀는 6년 만에 만난 강연룡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기다리니까 오네.” 그는 강연룡 대원의 짧은 손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깊은 포옹을 나눴다. 모두가 가슴 뭉클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소주 먹는데 이상 없지? 이렇게 연룡이도 만났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다음날 카트만두를 떠나 카라반에 나섰다. 원정대는 베시스하르~다라파니~틸체~고아~수르키~찰리카르카~하부~빔탕을 거쳐 라르케패스(5135m)~다람살라~삼도를 거쳐 9월 4일 카라반 마지막 마을인 사마가온에 도착했다.

 
6년만에 만난 강연룡과 비원 대표 윤기자씨.


사마가온에서 반가운 손님이 원정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0년 강연룡이 동상에 걸려 카트만두로 이송되기 전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현지인이었다. 그는 티베트로 물물교환을 하러 갔다가 원정대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뜨거운 포옹 후 강연룡의 손을 살폈다. 그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사라진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친구가 있는 산으로!

9월 8일 200명의 포터를 동원해 마나슬루 베이스캠프(4800m)로 향했다. 대원들은 고소적응을 하며 천천히 고도를 높여가며 오후 2시 무사히 BC에 도착했다. 이어 식량과 장비를 점검하고 본격적인 등반을 준비했다. 다음 날 윤치원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 모두 말없이 잔만 올렸다. 가장 마음의 상처가 컸을 강연룡 대원이 마지막으로 잔을 올렸다. 그는 절을 하면서 짧게 말했다. “형님! 이제 내려갑시다. 가족들도 봐야 할 것 아이요?”

대원들은 가까스로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9월 10일 아침 6시 대원들과 셰르파들은 1캠프(5600m)를 만들기 위해 출발했다. 당초 2캠프를 6300m에 설치할 계획이었만 조금 높여 6600m에 세우기로 했다. 마나슬루를 등정한 김재수 부대장과 강연룡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낮 12시 30분 대원들은 1캠프에 도착해 고소 적응에 들어갔다.

9월 15일 세븐서미트 대표 밍마가 BC를 찾아왔다. 밍마와 그의 동생은 네팔 셰르파 최초로 8000m 14개 봉우리를 올라 부와 명예를 얻은 성공한 사업가다. 밍마는 원정대에 제안했다. “이번 수색에 셰르파 1명을 지원하겠다. 만약 윤치원을 찾으면 구조팀을 동원해 적극 돕겠다.”

이상호 대장은 감사의 말을 전했다.

9월 16일 셰르파들은 2캠프를 설치하고 정상으로 가는 루트를 수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대원들도 2캠프에 도착해 수색작업에 대비했다. 대원들과 셰르파들은 강연룡 대원이 기억하는 장소를 집중적으로 수색하기로 했다. 이상호 대장은 말했다. “치원이가 함께 가고 싶다면 모습을 보여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남으려는 것이니까 미련 없이 내려가자.”

이어진 수색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강연룡이 2010년 사고 당시 동상에 걸린 자신을 도와준 현지인을 6년 만에 만나 인사하고 있다.
마지막 수색 아쉬움만

9월 21일 수색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대원들과 셰르파들은 당시 올랐던 등반 루트를 중심으로 수색 범위를 좁혀 나갔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인 1조로 나눠 찾았다. 로프에 매달려 설벽과 빙벽을 오가며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높은 고도에서 그를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웠다. 다음 날 아침 대원들은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김재수 부대장은 말했다. “후배를 위해 언제 이런 일 하겠노. 자 힘내서 올라가자.”

거대한 설벽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지난 5년간 발견되지 않은 것은 깊지 않은 크레바스에서 비박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원들은 틈이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뒤졌다. 약간의 틈이 있는 설벽 구간은 피켈로 얼음과 눈을 헤치고 살폈다. 강연룡은 2010년 사용했던 빨간색 로프를 발견했다. 로프가 눈 속에 깊게 묻혀 있어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강연룡은 윤치원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지점에 도착해 필사적으로 수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셰르파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날씨도 나빠지고 있었다. 김재수 부대장을 중심으로 모두 모였다. 강한 바람과 눈으로 대화가 힘들 정도였다. 원정대는 일단 하산했다.

베이스캠프에서도 며칠간 기상이 악화할 것이라는 무전이 왔다. 이상호 대장은 하산하라고 지시했다.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하산으로 작별할 시간이 없었다.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대원들은 이상호 대장이 준비한 소주를 2캠프 주변에 뿌렸다. 윤치원이 사라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는 마지막 술이었다. 그사이 많은 눈이 내려 주변은 화이트 아웃이 발생했다. 대원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오후 7시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돌아왔지만 마음은 허전했다. 폭설은 며칠간 계속됐다. 원정대는 결국 하얀 산에 윤치원을 남겨두고 하산하기로 했다. 해맑게 웃던 그의 모습만 가슴에 안은 채로.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원정대는 윤치원을 기억하기 위해 마나슬루 주변에 동판을 세웠다.
 
 
지난 1년간 경남등산 40년사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총 53편의 글들이 산악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합니다.

경남산악연맹 등산 30년사를 만든 조형규 전 경남산악연맹회장님과 이번 시리즈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김재수 경남산악연맹회장님, 귀한 자료를 기꺼이 보내주신 마산산악동지회 김인태 대장님, 울산 이상호 대장님과 박성만 선배님 등 많은 분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시리즈에 지면을 기꺼이 내어주신 고영진 경남일보 회장님과 관계자, 협찬을 아끼지 않으신 이재근 산청군수님과 직원 여러분, 한국농어촌공사 경남지역본부 양명호 본부장님과 직원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 글들은 산을 오르다 먼저 간 선·후배 산악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들과 딸을 히말라야에 묻고, 가슴에 한(恨)이 맺히신 아버지·어머니들과 가족들에게 바칩니다.

 
라마제를 지낸 후 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당. 왼쪽부터 박명환, 강연룡, 김재수, 이상호, 정다솜 대원과 셰르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