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47) 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47) 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
  • 경남일보
  • 승인 2020.11.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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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산, 영광과 시련 남긴 도전

양산시 승격 10주년 기념 원정 나선 3명의 산악인
곽정혜 경남 여성 첫 등정…하산길 조난 고비 넘겨
 
2007년 세번째 도전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이상배 대장.
2006년 5월 18일 낮 12시 5분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곽정혜
양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이상배 대장은 2006년 양산시 승격 10주년을 맞아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8850m) 등반에 나섰다. 원정대장 이상배를 비롯해 대원 곽정혜(26세), 이승(52세) 대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양산 아시안알파인클럽 소속이었다.

이상배 대장은 1990년 미국 요세미티 암벽 등반을 시작으로 등산에 입문했다. 1996년 초오유(8201m) 원정대장을 맡아 첫 8000m 산을 등정했다. 1997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 등정, 1998년 아프리카 최고봉 킬로만자로(5895m) 등정, 1999년 가셔브롬2봉(8035m) 등정했다. 2000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2002년에는 세계 4위봉 로체에 올라 대기만성형 등반가였다.

곽정혜 대원은 2004년 동계 아마다블람(6856m)과 2005년 메라피크(6476m)를 오르며 여성 산악인으로서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이승 대원은 2004년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 트레킹과 2005년 몽블랑(4807m)을 등정했다.

 
 
폭설로 베이스캠프 붕괴…막힌 등반

양산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4월 5일 쿰부 빙하 아래 베이스캠프(5300m)를 설치했다. 이상배 대장과 곽정혜 대원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 이승 대원은 로체를 등반하기로 결정했다. 2006년 봄시즌 에베레스트 BC에는 전 세계에서 25개 팀이 몰렸다. 2캠프(6400m)를 설치한 각 원정대는 매일 눈이 내리고, 그에 따라 고소캠프 건설이 늦어지자 등반에 별 진척 없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양산 원정대는 3캠프(7020m)까지 진출해 고소적응을 마친 뒤 남체(3400m) 마을로 내려가 체력을 회복하고 정상을 향한 의지를 되새겼다.

며칠 뒤에 다시 베이스캠프에 되돌아왔으나 폭설로 인해 모든 팀의 등반이 거의 중단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호기롭게 등반에 나섰던 외국 원정대의 셰르파들이 아이스폴 붕괴로 인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어느 팀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5월 11일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북면(티베트 방면)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선 후 남면(네팔 방향)으로 하산하는 데 성공한 것. 정상으로 가는 길이 마침내 열린 것이다. 5월 16일 한국의 중동고등학교 산악부 원정대가 정상 공격에 나섰다. 16일 오후 4시 사우스콜(8000m)에 도착한 신장섭 대원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정상으로 향했고, 이튿날인 17일 오후 3시 10분 정상에 섰다.

마지막 캠프에서 쉬지 않고 정상으로

같은 날 오전 9시 곽정혜는 3캠프를 출발해 오후 2시경 사우스콜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침에 함께 3캠프를 나섰던 이상배 대장은 늦도록 사우스콜에 도착하지 못했다. 곽정혜는 텐트에서 산소마스크 착용은커녕 잠도 한숨 못 자고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이상배 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후 9시 사우스콜을 출발해 정상에 가기로 한 계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 대장은 오후 8시가 되어서야 사우스콜에 도착했다. 그는 쉴 틈이 없었다.

곽정혜는 조심스럽게 이상배 대장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차라리 4캠프에서 하루 쉬고 체력을 회복한 후에 내일 밤에 정상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이상배 대장은 단호하게 답했다. “출발하자!”

텐트에서 호흡을 고르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뒤 밤 10시에 마지막 캠프를 떠났다. 이 대장이 앞서갔고, 곽 대원이 뒤를 따랐다. 경사는 완만했지만 빙판에 로프가 없어 매우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했다. 출발한 지 8시간 정도 지난 아침 6시 그들은 해발 8500m 지점 발코니에 도착했다. 이상배 대장은 체력이 극도로 떨어지면서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그는 곽 대원에게 지시했다.

“나 때문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셰르파와 함께 정상으로 가라. 나는 천천히 따라가겠다.”

곽정혜 대원은 고민했다. 이상배 대장은 덧붙였다. “우리 원정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네가 먼저 가서 정상에 올라야 한다. 나는 늦더라도 정상에 반드시 갈 것이다.”

 
사우스콜에서 하강하고 있는 곽정혜 대원
한국 5위·경남 최초 여성 에베레스트 등정

결국 곽정혜는 셰르파와 함께 발코니를 떠나 남봉(8750m)으로 향했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남봉에 도착한 뒤 곽정혜는 여분의 산소를 체크하고 셰르파와 상의해 새 산소 한 통을 그곳에 보관해두고 배낭 무게를 줄였다. 정오를 앞두고 그들은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가는 악명 높은 힐러리 스텝(8771m, 높이 12m의 수직 암벽 구간으로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 이름에서 유래)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천안원정대 이세중·박주열 대원이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곽정혜는 “등정 축하합니다. 수고 많았습니다”고 말했다. 그들은 답했다. “조금만 고생해라. 정상이 바로 앞이다. 행운을 빈다.”

정상에 가까이 왔다는 격려에 곽정혜는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정체 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힐러리 스텝을 돌파했다. 마지막 캠프를 떠난 지 14시간 만인 5월 18일 낮 12시 곽정혜는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경남 여성 산악인 최초 등정이었고, 한국 여성으로는 다섯 번째였다. 1993년 대한산악연맹이 주관한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지현옥)의 지현옥·최오순·김순주 대원, 그리고 2004년 오은선에 이은 등정이었다.

곽정혜는 회상했다. “간절히 바랐던 세계 최고봉 꼭대기에 올랐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함께 정상에 서지 못한 대장님에 대한 미안함과 빨리 4캠프로 내려가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뒤늦게 오른 대장…설득 끝에 함께 하산

그는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는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바람도 점차 강해졌다. 캠코더로 주변 풍경을 짧게 촬영한 후 하산을 서둘렀다.

다시 남봉에 내려선 곽정혜는 깜짝 놀랐다. 이상배 대장이 혼자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 대장의 파트너였던 셰르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이 대장을 버려두고 혼자 사우스콜로 하산한 것이다. 이 대장은 산소와 체력이 바닥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상에 가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쳤다.

“남봉에서 비박한 후 내일 다시 정상에 도전하겠다.”

곽정혜는 난감했다. 대장을 두고 내려갈 수도, 그렇다고 함께 비박할 수도 없었다. 곽정혜는 올라갈 때 남겨두었던 예비산소를 대장에게 줄 계획이었지만, 셰르파가 곽 대원과 상의도 없이 다른 팀의 셰르파(지인)에게 말해 4캠프로 내려보낸 뒤였다. 곽 대원은 무척 화가 났지만 셰르파와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 대장을 산소도 없이 남봉에서 비박하도록 내버려 두고 혼자 내려갈 수도 없었다.

5월 18일 오후 2시. 그녀는 1시간 넘게 대장을 설득해 발걸음을 아래로 돌릴 수 있었다. 그새 많은 눈이 내려 앞서 내려갔던 이들의 발자국은 모두 사라졌다. 곽정혜, 이상배 대장, 셰르파는 안자일렌을 한 채 멀고 위험한 하산을 시작했다. 세찬 눈보라가 몰아쳤다. 고정 로프는 눈에 묻혀 찾기도 힘들었다. 모든 것이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겨우 발코니 부근에 도착하자 셰르파는 “위험한 구간이 끝났다”며 안자일렌을 풀고 혼자 내려가 버렸다.

 
조난지점
헤어진 대원들…목숨 건 탈출

눈보라가 치는 능선 위에 이 대장과 곽 대원만 남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은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로프로 서로의 몸을 묶지 않은 채였고, 이 대장이 앞에서 곽 대원이 뒤에서 걸었다. 그러나 앞서가던 이 대장이 엉뚱한 길로 내려가면서 이내 두 사람은 흩어지게 되었다.

오후 5시쯤 로프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한 곽정혜는 그때까지 내내 목에 걸고 있던 캠코더를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땀과 눈에 젖은 장갑을 벗고 새 장갑으로 갈아 끼기 위해 배낭을 여는 순간 돌풍이 불었고, 그 순간 그는 중심을 잃고 굴러떨어졌다. 100m 정도 추락했지만, 다행히 사우스콜로 이어지는 작은 테라스에 떨어져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곽 대원은 일어나 텐트를 찾아가려 했지만 화이트 아웃으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위험한 하산 대신 그곳에서 돌풍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피로와 탈진으로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극적으로 살아온 곽정혜…손·발가락 7개 동상

“정혜 씨….” 한참 뒤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곽 대원의 귓가에 들렸다.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는 점차 크게 귓전을 스쳤다.

“추워요….”

5월 18일 밤 중동고 2차 공격조가 정상으로 가다 쓰러져 있는 곽정혜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추락 후 5~6시간 정도 영하 20도 이상의 추운 날씨에 노출되어 있었다. 지친 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중동고 팀 3명(이명호, 최인수, 박재우) 중 최인수, 박재우 대원이 등정을 포기하고 곽정혜를 4캠프로 옮겼다. 추위에 노출된 곽정혜의 손가락은 이미 동상으로 시커멓게 변했지만, 두 사람은 따뜻한 물로 응급처치를 하며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곽정혜는 밤새 까무러쳤다가 정신을 차리기를 반복했지만, 5월 19일 아침에 기력을 회복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날 셰르파들의 도움으로 4캠프에서 2캠프까지 걸어서 내려갔고, 이튿날에는 한국의 다른 원정대원들과 셰르파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아이스폴을 통과하여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그녀는 귀국 후 왼손 손가락 5개와 오른손 새끼손가락 하나 그리고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잃었다.

 
곽정혜 대원을 들것에 실은 동료들이 크레바스를 힘겹게 건너고 있다.
곽정혜 대원을 구조하고 있는 동료 대원들
이상배 다음 해 도전 정상에서

한편, 이상배 대장은 남봉에서부터 곽정혜와 함께 하산하다 발코니에 도달할 때쯤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했다. 셰르파가 먼저 내려 가버린 뒤 두 사라만 남게 되자 이후부터 이 대장이 선두에 섰다. 그러나 그는 로프를 잡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그는 순간 “에베레스트에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오래지 않아 추락이 멈췄다. 체력이 완전히 떨어진 그에게 죽음이 점차 다가오자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 아들은 이렇게 죽어갑니다.”

이 대장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마지막 힘을 모았다. 그리고 기어서 4캠프로 내려갔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불빛이 보였다. 희망의 불빛이었다. 셰르파들의 도움으로 그 역시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이상배 대장은 다음 해인 2007년 세 번째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서 53세의 나이에 정상에 섰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취지문]

양산시 승격 10주년을 맞이하여 양산지역 산악인들을 주축으로 한 경남 히말라야 원정대는 혁신, 개척, 도전이라는 지방자치단체의 목표를 가지고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도전에 나서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도전하고자 하는 봉우리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와 세계 4위 고봉인 로체(8516m)입니다.

신의 허락 없이는 접근할 수조차 없는 어렵고 험한 곳에 견고한 정신력과 단련된 강인한 체력으로 정상에 도전하여 힘차게 웅비하는 경남 양산시 깃발을 에베레스트 정상에 휘날리고 올 것입니다.

우리 원정 대원 모두는 지구의 용마루에서 꿈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여 경남 양산의 등산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양산시가 추진하는 혁신, 개척, 도전의 시정 목표를 양산시민 모두가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히말라야에서 우리 원정대원들이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각계각층의 아낌없는 성원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2006 경남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원정대 원정대장 이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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