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42) 로체 남벽(上)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42) 로체 남벽(上)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9 19:1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도로공사, 2004 난공불락 로체 남벽 등정 도전
로체 남벽 전경
“로체 남벽. 듣기만 해도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는 등반가라면 벌써 심장은 요동치고 숨은 가빠진다. 빙하에서 정상까지 3300m를 치솟아 오른 거대한 암벽은 마치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듯이, 퍼부어대는 낙석과 눈사태 그리고 오르는 자의 몸을 날려버릴 듯이 불어대는 광풍을 호위군으로 삼아 구름 속 마법의 성처럼 서 있다. 그 성문을 여는 열쇠는 셰르파도, 산소통도 아니요, 오직 미지에 대한 도전정신과 빙하의 차디찬 물에 넣어도 식지 않을 열정뿐이다.”-김창호.

2004년 한국도로공사는 로체(8516m)와 로체샤르(8400m) 남벽 2개 루트를 등정하기 위한 원정대를 파견했다. 이들은 체코 루트와 옛 소련 루트 사이에 새로운 길로 오른 후 7800m에서 로체와 로체샤르를 각각 오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로체남벽과 로체샤르 남벽 등정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등로주의 꽃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 두 남벽을 동시에 도전한 사례는 없었다. 2년 전 시샤팡마 남서벽에 한국 최초로 8000m에 코리안 루트를 만든 경험을 기반으로 세계 산악계에 길이 남을 등반을 준비했다.

로체 남벽·로체샤르 남벽 동시 도전

‘2004평화를 위한 한국도로공사 로체남벽·로체샤르원정대’는 박상수 대장을 중심으로 박정헌 등반대장, 강연룡, 윤치원, 김창호, 김주형, 김미곤, 이정현, 송형근, 주우평, 박정용, 박상훈 등 대한민국 최고의 클라이머들이 참여했다. 2000년 K2 등정자 6명이 참여하는 등 대원들은 히말라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은 난공불락의 로체남벽을 오르기 위해 지난 1년간 강도 높은 훈련을 마쳤다.

2004년 3월 12일 원정대는 히말라야의 관문 네팔로 향했다. 그러나 원정대의 희망과 기대와 달리 네팔의 국정은 어두웠다. 네팔 마오이스트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정세는 불안했다. 서둘러 행정절차를 마친 원정대는 헬기로 식량과 장비를 쌍보체로 보냈다. 도보 카라반을 시작한 원정대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 멀고도 먼 카라반이었지만 하얀 산에 햇살이 눈부신 아침, 태양이 내리쬐는 따사로움, 노을이 주는 또 다른 빛의 향연은 대원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1캠프 위 허파바위를 등반하고 있는 주우평 대원


눈 사라진 검은 암벽…위압감 작렬

베이스캠프(BC)가 가까울수록 신비로움은 더해갔다. 그러나 그 신비로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원들은 현지인들과 만나면서 등반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현지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해 겨울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등반할 때 낙석으로 인해 등반이 쉽지 않을 것이다.”

대원들이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 쉬는 동안 박정헌 등반대장이 먼저 정찰을 떠났다. 박정헌은 로체 남벽을 바라봤다. 그는 현지 주민들의 걱정을 그는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는 회상했다. “로체 남벽은 말 그대로 시커먼 절벽이었다. 몇 년을 지켜본 로체 남벽이 아니었다. 이상기온으로 눈이 내리지 않아 등반이 시작되는 초입 구간 등 일부 루트를 제외하고는 눈과 얼음이 거의 없었다. 만약 남벽을 등반한다면 정상에 오르기 전 낙석이 대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될 것 같았다.”

3월 28일 로체 빙하 모레인 언덕에 BC(5300m)를 설치했다. 그러나 BC는 공간이 좁고 물도 없어 생활하기에 상당히 불편했다. 물을 길어오기 위해서는 빙하까지 왕복하는데 2시간 정도가 걸렸다. BC는 등반의 시작과 끝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에 지친 대원들이 피로를 풀고,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1캠프 전경
낙석, 붕괴 위험…로체샤르 포기

세계 3대 남벽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로체 남벽은 결코 호락호락한 루트가 아니었다. 원정대는 어떤 루트를 올라야 할지 논쟁을 벌였다. 2003년 김재수 지도위원과 박정헌 등반대장, 윤치원 대원이 정찰한 정보를 바탕으로 루트를 선정하고 원정을 준비했다. 그러나 당초 루트는 눈사태 위험이 너무 높아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부 대원들은 지난해 겨울 일본팀이 시도한 슬로베니아 초입과 체코 루트가 시작되는 지점을 둘러본 후 의견이 나눠졌다. 어떤 루트로 올라야 할지 열띤 논의 끝에 보다 세락 붕괴 위험이 없는 루트를 결정했다. 결국 원정대는 로체샤르는 포기하고 로체 남벽에 집중하기로 했다.

적설량이 적어 민낯을 드러낸 절벽에서 떨어지는 돌은 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많은 대원들이 고정로프를 따라 등반할 경우 사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낙석으로 등반 시간도 길어질 것으로 보였다. 결국 원정대는 효율적인 등반을 위해 3개 조로 나눠 운행하기로 했다. 특히 오후만 되면 날씨가 나빠지는 것을 감안해 이른 새벽에 운행하기로 했다.

4월 1일 라마제를 지내고 남벽 밑까지 루트 정찰에 나섰다. 원정대는 눈으로 직접 남벽 루트를 확인한 후 등반 루트를 확인했다. 이틀 후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했다. 로체 빙하 중앙을 가로지르며 빙탑 지대를 통과했다. 빙하 속에서 마치 바위섬처럼 생긴 암벽지대(5400m)를 지나 짐들을 수송했다. 바위섬은 실질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곳으로 넓고 위험한 크레바스를 건너야 했다. 다른 대원들은 하산했다. 5년 전 이 루트를 따라 7200m까지 진출한 경험이 있는 김미곤 대원이 선두에 나섰다. 주우평·이정현·김창호 대원의 지원을 받은 그는 암벽지대를 왼쪽으로 돌아 설사면을 통과한 후 제1바위 밴드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곳을 통과하자 큰 어려움 없이 20여 구간을 올랐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로프 400m를 설치한 대원들은 BC로 하산했다. (43편에 계속)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로체 남벽 등반사(1973~2004)

로체 남벽은 세계 3대 남벽 가운데 등반이 가장 어려운 거벽 중 첫 번째로 손꼽힌다. 1975년 이탈리아의 유명한 산악인 리카르도 캐신은 로체 남벽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로체 남벽을 이렇게 표현했다.

“20년 후 누군가 등정하더라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벽이다. 그저 아이거 북벽의 두 배 높이가 아닌 그야말로 거대한 괴물이다.”

1973년 봄 일본원정대를 시작으로 30년간 이탈리아, 유고, 프랑스, 폴란드, 체코 등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이 20여 차례 이상 도전했지만 모두 무릎을 꿇었다. 1970~80년대 세계 산악계를 이끌었던 라인홀트 매스너는 두 차례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폭주 기관차로 불리며 후퇴를 모르던 폴란드의 전설 예지 쿠쿠츠카는 단 한 번의 실수로 8300m 지점에서 추락사 하고 말았다. 로체남벽은 말 그대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철옹성이었다.

리카르도 캐신이 예언한 지 15년이 지난 1990년 4월 24일 유고 출신의 토모 체센이 64시간 만에 단독으로 등정했다. 그의 등정은 세계 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해 가을 러시아의 세르게이 베르쇼프와 블라디미르 카라타예프가 정상에 서면서 등정 의혹을 제기했다. 토모 체센은 등정 사진을 제시하지 못했고 자신이 루트를 설명한 것과 러시아 원정대가 밝힌 것과 달랐다. 논쟁 끝에 그의 등정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됐다. 러시아팀도 등정 사진을 제시하지 않아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0년 이후 로체 남벽을 올라 완벽한 정상 사진을 제시한 원정대는 단 한팀도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유나 2020-10-20 11:13:05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