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35) ‘빛나는 산’ 알파인 스타일로 오르다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35) ‘빛나는 산’ 알파인 스타일로 오르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8.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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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선대원들(왼쪽부터 이상배 김인기 최병우 조형규)
“한 인간이 자신의 온 정열을 바쳐 일을 성취했을 때 그 기쁨과 쾌감은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취 뒤에는 수많은 고통과 인내가 요구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이병갑 원정대장.

1999년 경남산악연맹은 8000m급 원정에 3개 원정대가 참여했다. 파키스탄 카라코람에 위치한 가셔브롬4봉 원정대를 필두로, 가셔브롬2봉(8035m) 원정대, 영호남 산악인들이 참여한 K2(8611m) 원정대였다. 가셔브롬2봉 원정대는 이병갑 등반대장(53)을 중심으로 조형규(51)·이상배(46)·김인기(30)·최병우(29) 대원이 참여했다. 말 그대로 소규모 원정대였다. 이번 원정에 참여한 대원들은 경남산악연맹이 야심차게 준비한 파키스탄 8000m급 4개봉 동시 등정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IMF 영향으로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가셔브롬2봉 원정대가 구성된 것이다.

8일간 멀고 먼 카라반

원정대는 5월 21일 한국을 떠나 파키스탄 카라치에 도착했다. 카라치에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5월 28일 이슬라마바드와 라왈핀디에서 행정 절차와 식량과 장비를 구입한 후 버스로 스카르두로 향했다. 6월 2일 지프를 이용해 마지막 종착지인 아스콜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포터들을 선발하고 카라반에 들어갔다. 파키스탄 카라코람 카라반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아스콜리에서 걷기 시작해 산 넘고, 물 건너고, 황량한 자갈밭을 지나 세계에서 가장 긴 발토르 빙하를 걸었다.
 
트랑고타워를 지나다 기념촬영을 한 대원들. 왼쪽부터 이상배 김인기 이병갑 조형규 최병우 대원.
6월 7일 원정대는 탐험 같은 카라반을 마치고 베이스캠프(5200m)에 입성했다. 베이스캠프~1캠프(5900m) 구간은 수많은 아이스폴과 히든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다. 가장 힘든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원정대는 10일부터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다. 5일간 숨어 있는 크레바스를 찾아내 표식기를 꽂으며 루트를 개척했다. 김인기 대원이 크레바스에 빠져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구사일생으로 구출하며 모두는 한숨을 돌렸다.

붐비는 가셔브롬 베이스캠프…전남팀 도착

원정대가 1캠프를 구축한 후 반가운 사람들이 베이스캠프에 들어왔다. 전남산악연맹의 가셔브롬1봉과 2봉 원정대가 도착했다. 이어 스페인과 국제대 등 많은 원정대가 몰리면서 베이스캠프가 북적였다. 1캠프는 넓은 설원에 만들어졌다. 하룻밤을 보낸 대원들은 고소적응을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영호남 원정대원들은 반갑게 인사하며 오랜만에 해후를 만끽했다. 전남연맹팀은 캠프 구축에 감사를 표시하고 등반에 부족한 부분은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국제대는 날씨가 좋다면 3캠프(6900m)만 설치하고 곧바로 정상에 오를 계획이었다. 특히 국제대에 참여한 브라질 산악인 왈드마르는 이번 시즌에 가셔브롬1봉과 가셔브롬2봉을 등정한 후 곧바로 K2(8611m)를 연속 등반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바나나 리지가 시작되는 곳에서 전남연맹 대원들과 루트를 만들고 있다.
눈사태 전남대원 150m 이상 추락

6월 25일 전남연맹과 공동으로 2캠프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이들은 번갈아 오르며 고정로프 작업에 많은 땀을 흘렸다. 이 구간은 눈사태 위험이 매우 높은 곳이다. 대원들이 바나나 리지 초입에 다다르자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눈 위에서 지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눈사태가 발생했다. 가장 먼저 오르던 전남연맹 박근구 대원이 눈사태를 맞아 150m 이상 추락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고, 대원들은 그를 구조했다. 결국 대원들은 더 이상 등반은 어렵다고 판단, 1캠프로 돌아왔다. 이틀간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6월 28일 새벽 2시 1캠프를 출발했다. 엊그제 발생한 눈사태 지역을 조심스럽게 통과하고 800m에 달하는 고정로프를 설치했다. 예상보다 로프가 많이 필요했다. 1~2캠프 구간에 약 700m 정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1000m 이상을 소모했다. 다음날 2캠프(6500m)를 구축하고 200m 로프를 더 설치한 후 1캠프로 하산했다.

김인기 대원은 회상했다. “고소 포터 없이 짐을 수송하고 로프 작업을 하다 보니 많이 지쳤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했다. 다른 나라 원정대는 루트 개척에는 관심이 없었다. 루트가 만들어지면 정상에 갈 욕심만 챙기고 있었다. 성질 급한 한국 원정대가 길을 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원정에서도 그렇지만….”

4캠프 구축…강풍에 1차 등정 포기

휴식으로 한숨을 돌린 경남과 전남팀은 7월 6일 3캠프(6900m)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 날 저녁 9시 조형규·이상배·김인기·최병우 대원은 4캠프로 향했다. 대원들은 바위와 눈으로 뒤덮인 1000m에 달하는 구간을 통과, 4캠프(7350m)에 안전하게 올랐다. 그러나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결국 1차 등정을 포기하고 대원들은 3캠프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배 대원을 제외한 3명의 대원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3캠프에 남은 이상배 대원은 스페인팀에서 식량을 얻어 배를 채웠다. 사실 원정대는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7월 8일 저녁 10시 영국원정대가 정상 공격에 나서 시즌 초등을 이뤘다.

 
3캠프에 선 조형규 대원.

이상배 대원 등정…체력 떨어져 구사일생

7월 9일 이상배 대원은 전남연맹팀과 함께 4캠프를 설치했다. 그는 7월 10일 새벽 2시 40분 4캠프를 출발해 9시간 만인 오전 11시 40분 정상에 섰다. 그는 베이스캠프로 하산하지 않고 상당한 기간 고소에 있으면서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4캠프에서 하루 쉰 이상배 대원은 베이스캠프로 귀환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회상했다. “높은 곳에 오래 있어서 등정 후 하산이 쉽지 않았다. 식량이 부족해 제대로 먹지 못해 피로가 누적됐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하산하면서 수백 번 주저앉았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드렸다.”

조형규 51세 최고령 8000m 등정

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한 조형규·김인기·최병우 대원은 7월 14일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그들은 한 캠프씩 전진했다. 7월 17일 새벽 4시 10분 그들은 마지막 캠프를 출발했다. 정상 밑 설사면을 횡단할 때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1시간 정도 바위 뒤에서 바람을 피했다. 그러나 바람은 멎을 생각이 없었다. 정상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고비가 찾아왔다. 그들은 고민했다.

“오를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

조형규 부대장은 고민했다. “고지를 눈앞에 두고 바람이라는 장애물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등정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너 그냥 물러서기에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기로 했다. 대원들과 함께 오르는 길을 택했다.”

강풍은 그치지 않았다. 대원들의 발걸음은 바람을 가르고 나아갔다. 잠시 후 더이상 오를 곳이 없었다. 그들은 정상에 섰다. 조형규 대원은 만 51세의 나이로 국내 최고령 8000m 등정 기록을 세웠다.

그는 그때를 돌아봤다. “대원 5명 전원이 정상에 서는 것이 목표였다. 안타깝게도 가장 체력이 좋은 이병갑 대장이 1캠프에서 심한 복통으로 등반을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50대이 나를 비롯해 40대 이병갑 대원, 30대 김인기, 20대 최병우 대원 등 연령별로 정상에 선 것이 위안이었다.”

원정대는 7월 20일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하고 7월의 마지막 날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등정후 축배를 마시고 있는 조형규 대원. 오른쪽부터 이병갑 대장 조형규 대원 김인기 대원 최병우 대원


[취지문]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용솟음치는 신성한 정신, 유약함과 안이함에 안주할 수 없는 모험심이 또다시 우리를 히말라야 거봉에 도전장을 내게 했습니다.
산에 대한 불타는 열정으로 경남의 산악인들은 눕체, 낭가파르바트, 안나푸르나1봉 남벽,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에 이어 가셔브롬Ⅱ·Ⅰ의 연속 등정에 도전하려 합니다.
운명처럼 산을 오르는 무상의 행위에서 인생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청춘으로 남으려 합니다.
‘99한국가셔브롬Ⅱ 원정대
대장 이병갑

 
 
 

 

등반 루트 및 구간별 루트 가셔브롬 2봉 등반루트.
가셔브롬2봉 주변에 있는 산들 왼쪽부터 H=바인타브락(7285m), G=무즈타그 타워(7273m), F=가셔브롬4봉(7925m), E=가셔브롬3봉(7952m), C=세계 2위봉 K2(8611m). 가셔브롬2봉 구간별 루트 1캠프~2캠프=해발 5900m 1캠프에서 6500m 2캠프 고도차는 600m. 등반 시간은 고소에 적응을 마치면 평균 5~6시간이 걸린다. 이 구간은 급사면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약 1시간 정도 설원을 지나야 한다. 이후 고정 로프를 설치하며 바나나처럼 굽은 ‘바나나 리지’를 통과해야 한다. 설릉을 따라 ‘나이프 리지’에 올라서면 2캠프가 나타난다. 텐트 10여 채를 칠 수 있는 비교적 좋은 캠프 사이트다. 2캠프~3캠프=3캠프(6900m)까지 고도차는 약 400m로 비교적 짧다. 약 5시간 정도 소요되며 중간부터 50도 정도의 설사면이 3캠프까지 계속 이어진다. 설사면을 통과하면 눈을 깎아내 텐트를 설치해야 한다. 가셔브롬2봉과 가셔브롬3봉 계곡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3캠프에서 바라보는 카라코람 산맥의 파노라마가 인상적이다. 3캠프~4캠프=3캠프 우측에 있는 암벽지대를 따라 완만한 설사면을 300m 정도 횡단한 후 본격적인 급경사를 만나게 된다. 중간부터는 설벽 곳곳의 바위들이 불안정해 낙석 사고 우려가 높아 주의가 요구된다. 정상 좌측 암벽지대 모서리 아래쪽으로 7350m 4캠프까지 고도차는 450m. 소요시간은 4~6시간이며 텐트 바로 아래는 남벽 급사면이라 장비 분실 위험이 있다. 4캠프~정상=8035m의 정상까지 표고차는 685m로 가장 긴 구간이다. 정상 피라미드 아래쪽 설사면을 우측으로 횡단해 약 7750m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 구간은 경사가 급해 고정 로프가 필요하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고 할 정도로 힘든 구간이다. 급설사면이 끝나면 설릉이 나온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매우 위험하다. 소요 시간은 총 7시간이다.
4캠프로 등반하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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