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여행밥상]얼큰한 짬뽕의 추억 동아반점
[박재현의 여행밥상]얼큰한 짬뽕의 추억 동아반점
  • 경남일보
  • 승인 2020.08.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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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놓칠 수 없는 한 그릇
펄펄 끓는 폭염이지만 이열치열, 담백한 듯 시원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출출할 때 뭐 먹지를 생각하면 퍼뜩 떠오르는 게 있다. 짜장 아니면 짬뽕이다. 한 마디로 중국집으로 발길이 향하는 건 어찌할 수 없다.

내가 진주에 터를 잡기 전 지금 근무지에서 2년을 시간강사로 일했는데, 언제나 지도교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정신은 시간을 아끼자는 거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잠은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자면 된다는 거. 밤 기차를 타고 오면 열차에서 자고,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12시간을 강의하고, 밤 고속버스로 올라가면서 자면 딱 하루에 모든 걸 해치울 수 있고, 다음날에는 출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때는 근무지가 서울이었는데, 밤 11시 55분인가 12시 인가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아침 7시 10분 진주 도착인데, 고속버스는 그 시간에 있다고 해도, 새벽 5시 30분에 도착할 판이니 어디 들어갈 데도 없고 해서 나는 기차를 탔다. 미리 예약을 하면 좌석을 얻을 수 있었지만 깜빡 했다면, 7시간을 넘게 서서 오는 거의 초인적인 정신을 발휘해야 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도착하면 목욕탕에서 씻고 1교시부터 수업에 들어가면 되었으니. 일요일 밤에 출발해서 월요일 밤에 강의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새벽 5시 반, 바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서 씻고 출근하면 아주 시간을 빠듯하게 잘 쓰는 거니. 매주 월요일은 그렇게 보냈다.

그때 저녁에는 늘 동아반점에서 짬뽕을 먹었다. 국물이 얼큰하고 시원했다. 보통 짬뽕하면 담치나 해산물이 들어가는데, 여긴 오징어 딱 하나만 들어간다. 나머지는 주로 야채다. 그것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데 국물맛은 정말 담백한 듯 시원했다. 맛이 강하다거나 진득하지 않다. 국물까지 싹 비우면 속이 든든한 게 정말 좋았다. 겨울에 먹으면 더할 나위 없는 한 그릇이었다. 보통 짬뽕은 어느 중국집이나 하지만, 비슷비슷한 맛을 내는터라 특별히 짬뽕 맛이 좋다고 소문난 집이면 정말 잘하는 집이다.

 
 
사실 그때는 일주일에 한 번 먹는 그 짬뽕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2년을 그렇게 지내다 아주 여기에 터를 잡고 오니 예사로 그 집을 찾았는데, 늘 같은 맛이었다. 하여, 난 누군가 시원한 거 없냐고 하면 바로 그 집을 추천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짬뽕집이라며. 사실이 그랬고. 이처럼 시원하고 얼큰한 짬뽕은 없을 거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추천을 하면 대체로 들은 사람들은 거길 갔다. 어땠느냐 물으면 역시나 정말 시원하고 좋다고 맞장구를 친다. 추천한 집이 ‘아닌데?’ 소릴 들으면 난감할 터인데 그런 일은 없었다.

맛집의 비결은 역시 손맛이다. 눈대중으로 간을 맞추는 걸로 보이지만, 그것은 경험칙에서 얻어지는 고수만의 비법이다. 주인은 육십 대로 보였는데, 어느 날부턴가 짬뽕 맛이 이상하게 달라졌다 싶어 보니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때부터 이 집에 발길을 끊었다가 거의 10여 년 만에 우연히 들리게 되었다. 예부터 먹던 짬뽕이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켰는데, 한 젓갈 먹어 보니 ‘어! 이맛이야!’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주인이 돌아가셨다는 소문도 돌고, 짬뽕 맛도 달라졌었는데….

지금 주인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물어보니 아들이란다. 벌써 20년이 지났으니 그도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것 같고. 미안한 마음에 “아버님은 돌아가셨지요?”하고 물었더니 살아계신단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지금 연세가 79세라고. 이제야 짬뽕 맛이 살아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말로건 실습으로건 지속적으로 전수를 받았던 거다. 바쁠 때는 그의 어머니가 나와서 서빙도 보는데, 오늘 보니 딱 그때 그 아주머니다. 20여 년이 지났어도 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짬뽕 국물 맛이 사라진다면 그것처럼 아쉬운 것도 없다. 해장으로도 딱인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 맛, 진주에 오시거든 고속버스터미널 뒷골목에서 동아반점을 찾으시라. 옛 간판 그대로다.



*동아반점 : 055-762-1233, 진주시 고속버스터미널 뒷골목



 
동아반점은 진주고속버스 터미널 뒷길에 있다. 주방에서 나온 굴뚝이 3층 높이까지 뻗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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