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로 본 그 시절 개천예술제
경남일보로 본 그 시절 개천예술제
  • 김지원
  • 승인 2019.10.1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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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회 개천예술제가 지난 10일 막을 내렸다. 경남일보 창간 110주년 기념 ‘그때 그 시절’은 경남일보와 개천예술제 인연을 살펴본다. 개천예술제는 사실 경남일보와 인연이 깊다. 개천예술제는 1949년 영남예술제로 처음 시작됐는데 당시 설창수, 박생광, 이용준, 이경순, 오제봉, 박세제 등 진주의 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든 최초의 지방종합예술제였다. 당시 설창수 선생이 본사 주필, 박세제 씨가 본사 중역이었다.

첫해 열린 백일장에는 아직 학생이던 이형기 시인이 장원급제를 했다. 당시 영남예술제 수상자 명단을 경남일보 게시판에 게재하고 작품은 지면에서 공개했는데 이 시인이 “지나가는 행인인체 하고 시간을 맞추어 그 곳으로 갔다. 내 이름이 장원으로 붙어 있어 놀랐다. 입상권에 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조금 가지고 있었지만 장원이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라고 훗날 회고하기도 했다.

그해 작품이 실린 지면은 6.25 전쟁통에 본사가 피난을 가면서 소실돼 남아 있지 않아 이 시인 역시 안타까워 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제2회 백일장 수상작품은 1951년 11월 4일자 지면에 공개됐다.

 

 

1959년 개최된 제10회 예술제부터 개천예술제로 명칭을 변경했다. 11회 대회까지 경남일보의 역할이 매우 컸다. 경비를 구하는 일도 경남일보에서 도맡았다고 한다. 11회 대회까지 설창수 선생이 대회장을 맡았다. 역대 대회장 중에는 설창수 선생 뿐만아니라 최재호, 박세제, 김윤양씨 등 경남일보 사장을 역임한 분들이 많았다.

1993년 43회 개천예술제에서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엠블렘이 처음 만들어졌다. 상모를 쓴 사람과 베레모를 쓴 사람 둘이 어깨를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남강을 끼고 있는 진주의 모습을 상징하는 형상이다. 이 해에는 새로나온 엠블렘에 맞춰 슬로건이 ‘어깨 걸고 만나자 새 하늘이 열린다’ 였다.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가을태풍 때문에 일부 행사가 휴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개천예술제 개최시기는 10월말과 11월을 오가다 2000년 제50회 대회부터 10월 3일 개천절에 맞춰 개최되고 있다.
지금 남강에 명물로 떠오른 부교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3년 이었다. 촉석루 앞에서 망경동까지 170m 길이의 부교를 설치해 강의 양쪽에 설치되는 풍물시장을 오가기 쉽도록 만들었다. 첫 해에는 다소 인기 없는 시설이었던 데다가 부교에 걸려서 쓰레기가 더욱 넘쳐난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최근에는 진주교나 천수교로 이동하지 않아도 강을 건널 수 있어 축제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교를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진주성과 행사장의 동선을 고려해 부교가 4곳이나 설치된다. 부교통행료는 처음에는 500원 이었지만, 남강유등축제가 유료로 치러졌던 지난 2015~2017년까지는 입장료를 내고 행사장에 들어가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올해 통행권은 편도에 2000원, 모든 다리를 하루 동안 추가비용없이 이용할 수 있는 종일권 5000원으로 판매된다.

 

1993년에는 문화예술회관 옥상에서 ‘93스카이파크페스티벌’이라는 행사를 준비했다가 취소한 일이 있었다. 당대의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을 예정되어 있었는데 출연료 문제로 공연이 결국 취소 됐다.

그해 열린 개천예술제를 평가하는 지면에는 한국무용과 일본춤이 섞여 나온 공연을 보고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는 내용이 다뤄졌다. 기모노 차림에 일본 악기를 들고 나와 공연을 한 것도 충격인데 기모노를 입고 행사장을 돌아다녀 낯뜨거웠다는 반응까지 있었다. 마침 1993년은 계사순의로부터 400주년이 되는 해여서 반발이 크게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1월 9일자에는 진주시민 고방자씨가 장문의 기고문을 보내와 지면에 게재하기도 했다. ‘남강 수상무대의 일 가부키 류 공연’ 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은 ‘임란선열 추모의 장에 어찌 이런 부끄러움이’ 라며 부당함을 토로했다. 투고를 보내온 고 선생은 “임진란에 참전했던 병사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유래되어 후에는 임진, 계사년에 순국하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행해진다는 유등이 떠 있는 역사의 물결 위에 샤미센 가락과 가부키가 공연된다는 것이 역사의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0년에는 개천예술제에 즈음해 “논개는 순창 사람” 주장 이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경상대 장원철 교수가 학술세미나에서 밝힌 내용이 화제가 됐다. 장 교수는 1998년 북한에서 발견한 ‘조선력사상식’에 등장한 ‘론개’ 항목에서 “임진 조국전쟁 시기 왜적을 반대하여 싸운 애국녀성, 의암이라고도 불렀다. 전라도 순창에서 태어난 그는 진주에서 량반들과 부자들의 천대를 받으며 기생생활을 하였다” 는 내용을 소개했다. 이 책은 북한의 과학백과사전 종합출판사에서 발간한 것으로 1998년 증보판에 논개에 관한 내용이 실렸다. 책에는 “순창기생 의암이는 우리나라 건지랴고 왜장 청정 목을 안고 진주 강남에 떨어졌네(논개가 실제로 죽인 것은 게다니이지만 민간에서는가등청정을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다)”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축제가 늘어가면서 개천예술제 소식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2010년 환갑을 맞은 개천예술제는 경남일보 1면을 다시 차지했다. 2010년 10월 5일자 10면에는 60돌 개천예술제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특집기사가 실렸다. 개천예술제를 맞아 진주예술인총연합회에서 추진한 ‘제60회 개천예술제 창제자 추모전’을 계기로 역대 인물들을 돌아봤다. 개천예술제 창간취지문을 쓰고 11대까지 대회장으로 예술제를 지켜온 파성 설창수 선생을 비롯해 원로 작가 내고 박생광 선생, 진주 문단의 기틀을 다진 동기 이경순 선생, 진주를 대표하는 서예가 청남 오제봉 선생, 영남예술제 발기인 중 하나라 경남일보 사장을 역임한 청파 박세제 선생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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