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새벽5시 창원 팔용농산물도매시장
[르포] 새벽5시 창원 팔용농산물도매시장
  • 이은수
  • 승인 2019.09.25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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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가격 신통치 않자 나온 한마디 “농민 차비는 챙겨줍시다”

경매사-중도매인 밀당 게임
수신호 방식 전자기기로 바껴
박진감 사라져도 눈치작전 여전
가격 하락땐 경매사들도 씁쓸
“조금이라도 제 값 받아드려야죠”
사람들이 단잠에 빠져있던 24일 새벽 4시, 평소 차량통행이 많은 창원대로 마저 한산한 시각에 인근 팔용농산물도매시장은 대낮처럼 불을 밝힌 채 분주한 하루가 시작됐다.

창원청과시장, 농협창원공판장 등 2개 도매법인이 자리한 팔용 농산물도매시장엔 전날 오후부터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농산물이 이날 경매를 위해 줄서 있었다. 수북이 쌓인 농산물 상태를 살피는 중도매인들의 눈치작전도 펼쳐졌다. 새벽 5시. 경매사 특유의 웅얼거림이 시작되자 중도매인들의 눈과 귀, 손이 빨라졌다. 중도매인과 소매상 등 수 십 명이 한데 엉켰다. 언뜻보면 혼란스러운 것 같았지만 나름의 질서는 있었다. 그러다 적절한 금액이 결정됐는지 이내 판이 끝나고 잠시 흩어졌다가 새로운 경매로 이어졌다. 중간에 경매가가 신통치 않을 땐 “농민 차비는 챙겨줘야 할 것 아닙니까” 라며 경매사는 중도매인들을 독려했다.

경북 상주에서 온 포도, 해외에서 물 건너 온 바나나, 복숭아 등이 줄줄이 중도매인 손으로 넘겨져 박스에 중도매인 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붙었다. 그렇게 이른 새벽 농산물도매시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6시가 넘은 시각. 4번째 경매사가 마이크를 잡을 때까지 경매는 계속됐다.

준비된 경매가 끝나고서 만난 한 관계자는 “농산물을 애지중지 키운 농가에게 제 값을 받아드려야 하고, 또 여기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그날의 지역 물가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피곤하지만 항상 최선을 다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1995년 10월 14일 개장한 도매시장, 공판장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지금까지 일요일과 명절을 제외하고는 24시간 도돌이표 생활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축적돼 팔용농산물도매시장의 나이가 25년이 됐다. 그동안 많은 이들의 땀이 더해진 덕분에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 중에서도 시장 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거래가 오가는 곳이 됐다.

현재 이곳을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은 도매법인 임직원과 중도매인, 경매사 등 130명이다.

개장과 함께 25년째라는 25번 중도매인 이규태 씨는 “추석 후 경매물량이 적어 빨리 끝났는데 대개 7시가 넘어야 된다”며 “힘들고 피곤해도 중도매인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보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창원청과시장 중도매인조합장이기도 한 그는 “전에는 경매를 수신호로 해서 활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중도매인이 버튼을 누르면 경매사가 모니터를 보고 낙찰하는 방식이어서 재미는 덜하다”면서도 “열기는 25년 전 그대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25년 세월, 도매시장은 좁은 데다 곳곳은 낡았다. 창원시는 중도매인 휴게실 조성 등 노후시설 개선사업을 통해 종사자의 사기를 진작시킬 방침이다.

농산물도매시장의 숨소리와도 같은 경매사의 웅얼거림이 계속되는 한 이곳 사람들의 새벽은 그 어느 곳, 그 누구보다도 희망으로 가득했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경매 진행상황에 집중하는 중도매인들.
경매가 진행 중인 팔용농산물도매시장 과일경매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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