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도전] 하동 주민공정여행사 ‘놀루와’
[행복한 도전] 하동 주민공정여행사 ‘놀루와’
  • 백지영
  • 승인 2019.08.07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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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 8명 의기투합해 조합형태 여행사 설립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문화체험활동 마련
청년들 고향으로 돌아오게하는 마중물 꿈꿔
하동 송림공원과 포구공원을 옆에 끼고 섬진강변을 거슬러 올라오다 악양 방면으로 길을 틀어 들어오면 가파른 경삿길 위에 위치한 옛 축지초등학교가 눈에 띈다.

2017년 개보수를 통해 악양생활문화센터로 탈바꿈한 이 건물 2층에는 ‘주민공정여행 놀루와’라고 적힌 나무 문패가 외지인을 반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직원 5명이 손님을 맞이한다.

주민, 공정, 여행. 모두 아는 단어지만 이 셋을 주르르 붙여 쓴 조합은 영 익숙하지 않다. ‘여행’이라는 단어로 관련 계통이겠거니 추측할 수는 있지만, 작정하고 찾아와야 할 정도로 하동 깊숙한 장소에 터를 잡은 것은 번화가에서 화려한 간판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여타 여행사와는 다른 행보다.

 
주민공정여행사 ‘놀루와’ 직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정성모 감독, 조준형 PD, 양지영 PD, 김미라 PD, 조문환 대표.


‘놀루와’는 지난해 8월 하동군민 8명이 의기투합해 문을 연 주민공정여행사다. 이 중 2명이 실질적인 여행사 운영을 맡으며 고군분투해오다 올 봄 2명, 여름에 1명을 새로 채용해 다섯 명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산간마을에 자리 잡은 이 ‘주민 공정’ 여행사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조준형(36) PD는 ‘놀루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행과 관광에 대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진정한 여행을 위해서는 그 장소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지역 주민의 소개 하에 그들과 함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봤다.

“놀루와는 그 활동을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구현한 여행사에요. 조합원들 자체가 지역 주민이거든요. 타지에도 다녀와 보고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죠”

실제로 놀루와 조합원들은 각자 하동에서 감 와이너리,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농원식당, 막걸리 양조장, 친환경 유정란 농장, 문화 예술 사회적 기업, 녹차 생산 제다업체 등을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 조합원은 ‘놀루와’ 대표 조문환(55) 씨다. 그는 하동에서 쭉 공무원 생활을 하며 악양면장 등을 지내다 꿈을 위해 7년이나 남은 공직 생활을 그만두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공직에 있다 보니 농촌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잖아요. 고령화로 인해 농촌이 쇠퇴하는 문제가 심각해요. 귀농과 귀촌이 증가함에 따라 이질적인 문화가 유입되는데 이게 지역민과 맞부딪혀 갈등이 발생하기도 해요. 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조직이 매개체가 돼 이들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고 농촌을 활성화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지금까지 공공단체나 그들과 연계된 위원회 등 비슷한 취지의 활동을 시도한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 대표는 그러한 방식은 필연적으로 수명이 짧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익이나 생업과 연결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본다”며 “우리가 하는 활동이 사업으로, 그리고 공동체로 연결되면 좋겠다 싶었다”고 했다.

하동 특산물인 대봉감을 이용한 와인을 생산하는 정성모(51) 감독도 비슷한 생각으로 조 대표와 의기투합했다.

“국가 전체로 보면 취약 계층 대부분이 농촌에 있을 것이라고 봐요. 당시 저는 막 와이너리 운영을 시작하던 때였는데 어떻게 하면 이 지역에 더 도움이 될까 고민했지요. 그때 도회지 사람을 여기에 오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동은 섬진강, 최참판댁, 평사리 들판, 지리산 등 여행하고 즐길만한 좋은 자원이 많잖아요”

외지인이 하동을 여행하며 먹고 쓰고 자고 지역 농산물도 사가며 지갑을 열면 분명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조준형 PD는 “지역 전문가답게 지역 내 숨겨진 장소와 그곳에 담긴 이야기, 문화를 소개하려 한다”며 “하동이 천혜의 관광지라는 점은 검색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지역 사람들의 말은 저희만 전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조 PD와 함께 올봄 입사한 양지영(29) PD는 “하동이 품은 자원에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해 체험으로 이어질 때 가치가 배가된다”며 “섬진강에서 한 달에 한번 진행하는 달 마중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단순한 방문성 ‘관광’이 아닌 정말 ‘여행’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놀루와’는 두 PD 채용 당시 입사 시험을 흔치 않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면접을 본 후 지원자들을 섬진강에 데려다주고는 1시간 30분간 강변을 걸어본 뒤 에세이를 쓰라고 했다.

양 PD는 그 당시를 똑똑히 기억한다. “걷는 시간 절반 정도는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었지만 남은 시간은 ‘아, 너무 좋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매화꽃이 피던 3월이었는데 옆으로 초록빛 녹차 밭이 펼쳐져 있었죠. 섬진강까지 해서 이렇게 3가지가 모두 어울릴 수 있는 곳은 하동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귀촌한 부모님을 따라 근처 지리산권인 산청에서 지내왔지만 그 계절 섬진강 길을 걷다 보니 ‘이런 환경은 있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이곳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하동에 매료된 양 씨는 ‘놀루와’에 일하며 악양면민으로 지내고 있다.

올여름 입사한 김미라(35) PD는 더 먼 인천에서 왔다. 빽빽한 건물에 둘러싸인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책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시골 생활에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그는 요즘 제주도 등지에서 유행하는 ‘한 달 살기’차 남도 시골 마을에 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농촌 마을에서 어르신 일들을 돕다 보니 도시에서는 잊고 지나가던 절기별 문화를 느껴요. 각자 자기 일만 하던 도시와는 달리 지역민들끼리 든든한 공동체를 이뤄 같이 협력하는 문화가 좋더군요. 지역 사람들과 문화, 뻥 뚫린 자연까지 모두 좋았죠. 이러한 매력들을 저와 비슷한 도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이러한 과정에서 운영해온 프로그램은 △야반도주! 매계마을 외갓집 여행 △화사별서 고택 음악회 △평사리 섬진강 달마중 △평사리들판 논두렁 축구대회 등으로 이름만 봐도 ‘놀루와’만의 특색이 물씬 느껴진다.

‘놀루와’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나만의 여행, 내 취향대로 간다!’는 콘셉트답게 각각이 원하는 여행지를 골라 일정을 선택한다. 체험, 답사, 인문, 액티비티, 교육 등 관심 분야에 따라 여행지를 선택하면 ‘놀루와’ 측과 조율해 실제 일정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과제는 조금 더 많은 고객층을 확보하는 것이다. 설립된 지 얼마 안 됐고 인력도 많지 않다 보니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대형 여행사와 비교해 온라인 쪽 홍보가 충분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아직까지는 인터넷을 통한 여행 신청보다는 조합원의 역량에 의존한 경우가 많은 편이다. 긍정적인 측면은 다녀간 여행자들의 평이 좋아 그들의 소개를 받고 유입되는 고객이 많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경로로 온 손님이 전체의 70%가량에 이른다.

조 대표의 고민 중의 하나는 해외여행을 더 우선시하는 요즘의 풍토다.

“우리 국민들이 이제 우리나라는 볼 것 다 봤고 갈 곳이 더는 없다고 하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해요. 정보가 넘치고 교통도 발달한 상황 속에 멀리 나가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다들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실 낮은 자세로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게 한 가지도 없거든요. 최근 들어 젊은 층 중심으로 ‘소확행’이라며 소소한 여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게 아직 그렇게 큰 움직임은 아니죠”

국내 여행에 대한 편견도 극복해야 할 문제다. 정 감독은 “휴가철이면 국내 여행에 관한 안 좋은 보도가 많다”며 “바가지를 씌운다, 불결하다 등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니 사람들이 ‘제주도를 갈 바에야 동남아를 가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모든 지역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놀루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행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 다문화가정,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및 구호단체와 협업으로 ‘트래블 헬퍼(여행 도우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지만 쉽지만은 않다.

몸이 불편해 요양원에 머무르는 어르신들을 평사리 들판이나 섬진강으로 모셔 바람을 쐬게 해드리고 싶은데 차량 문제 때문에 아직은 꿈만 꾸고 있다. 정 감독은 “휠체어를 바로 싣고 내릴 수 있는 특수 버스가 있어야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데리고 안내할 수 있다”며 “렌트나 중고차 구매로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놀루와’의 장기적인 목표는 지역사회에 건강한 공동체를 구축하는데 하나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다른 조직이나 단체, 다른 조직이나 단체, 기업, 개인 등과 서로 연합해서 함께 지역을 크게 움직이게 하고 돌아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행을 중심으로서 출판, 문화 기획 등 사업을 융합시키고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청년들이 하동으로 되돌아오는데 놀루와가 하나의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들도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지역이 되었으면 하죠. 30년 후 이 지역이 발전해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쇠퇴하지 않고 현상 유지 정도는 할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답하는 조 대표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결연함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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