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가진 특별함, 세계에 전하고 싶어요"
"지역이 가진 특별함, 세계에 전하고 싶어요"
  • 백지영
  • 승인 2019.06.19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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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케 헤르만스 경상대 교수
'코리아넷' 명예기자 활동
한국의 산, 사찰, 축제 등 소개
"영상편집 제대로 배우고파"


“처음 한국을 방문한 80년대에는 독일인에게 한국이란 ‘차범근’과 ‘간호사’로 대변됐습니다. 교수직을 제안받고 다시 한국을 방문한 2007년 즈음에는 ‘인터넷 강국’, ‘삼성’이라는 첨단기술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K-POP이나 온라인 게임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수도권 외 지역 이야기 등 남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이야기를 세계인에게 전하고 싶어요”


하이케 헤르만스(53·여·독일)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해부터 ‘코리아넷 명예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리아넷’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이 운영하는 외국어 포털이다. 독일어 명예 기자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을 했는데 덜컥 선발됐다. 함께 도전장을 내밀었던 친구는 바쁜 일정을 이유로 중도 하차했지만 헤르만스 교수는 계속해 독일어 기사를 작성하며 독일어권 방문자에게 그가 보는 한국을 알리고 있다.

 

지난달 20일 세계인의 날 행사에 코리아넷 명예기자단 자격으로 청와대를 찾아 김정숙 영부인을 만난 하이케 헤르만스 교수(아랫줄 왼쪽에서 2번째)

“저는 다른 명예기자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고 지역에 거주하다 보니 남들과는 다른 기사를 작성하려고 해요. 케이팝이나 서울 중심의 콘텐츠 말고 그 밖의 한국 이야기가 제 글의 소재가 되지요”

헤르만스 교수는 “나이 탓인지 갈수록 전통적인 한국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며 “서울은 LA이나 런던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느낌이지만 진주나 지역의 중·소 도시는 그런 도시와는 다른 한국만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전통 찻집 등을 거론하며 “세계화가 안 된 점이야말로 바로 세계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올리는 기사 역시 이런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을 담고 있다. 가장 최근 올린 ‘역사의 훌륭한 재해석: 진주 논개제’라는 글에는 남강 위 수중 관중석에서 그가 직접 촬영한 논개순국재현극 사진이 담겨 있다.

그는 해당 글에서 진주성 전투 당시 논개와 의암 바위의 이야기를 다룬 후 이 과거가 강을 끼고 뮤지컬 형식으로 어떻게 재창조되고 있는지 소개한다. 이외에도 진주 소싸움, 하동 매화 축제, 석가탄신일에 방문한 해인사 등 경남의 지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재부터 3번의 DMZ 방문기, 제주 4.3 유적지를 돌아보며 그 기억을 공유하는 ‘다크 투어’ 참가기 등 정치적·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소재를 다뤘다.

이 같은 열정을 인정받아 헤르만스 교수는 지난달 20일 세계인의 날에 맞춰 진행된 코리아넷 명예기자단 청와대 간담회에 초청받아 김정숙 여사를 만났다.

영부인을 만난 것도 기억에 남지만 다른 명예기자들과 교류를 한 것도 좋은 경험이 됐다.

“당시 만났던 다른 명예 기자들은 어떻게 활동하나 유심히 살펴보고 있어요. 유튜브 스타도 있고 다양하더군요. 그들을 보며 저도 더 다양한 플랫폼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어져서 영상 편집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는 개인 페이스북 계정 외에 코리아넷에만 글을 올려왔던 그는 조만간 인스타그램도 개설해 자신이 느끼는 한국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전할 계획이다.

헤르만스 교수는 지난 2007년 인하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받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경상대학교로 터를 옮겼다.

“경상대에 외국인 정교수가 별로 없었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거기에다 건강을 위해 공기가 깨끗한 남쪽으로 내려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하하)”

진주로 왔더니 건강이 확실히 좋아졌는지 묻자 “전엔 괜찮았는데 작년부턴 여기도 대기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거주한지는 12년째지만 사실 그의 한국과의 인연은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 격동하던 1988년, 사업차 출장 온 아버지를 따라 처음 한국을 찾았다.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한국은 꽤 강렬했던 기억을 안겨다 주었다. 그는 90년대 들어서는 보다 심층적인 한국 공부를 위해 1년씩 2번을 한국에 머물렀다.

“1994년부터 고려대학교 어학원에서 1년 동안 한국어 공부를 했어요. 이후 영국 대학 박사 연구실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공부하다 1997년 한국에 들어와 성남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1년간 박사 연구원으로 있었어요”

대학 진학 시 남들과는 다른 공부를 하고 싶어 한국어·중국어 전공을 택했다는 헤르만스 교수. 한국은 흥미로운 이야기투성이었다.

독일인 멜렌도르프가 왜 100년 전에 한국에 왔는지부터 시작된 궁금증은 그가 조선 개화기를 주제로 동아시아학 석사 학위를 따게 했고, 고려대 어학원을 다니며 목도했던 수많은 대학생 시위들은 정치학(세부 전공 한국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는 데 일조했다.

90년대 대학가의 격렬한 시위 현장부터 재작년 대통령 탄핵 현장까지 모두 목도한 ‘외국인’ 한국 정치학 전공자의 눈에 보이는 요즘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헤르만스 교수는 “한국 정치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그게 내가 이 전공을 택한 이유”라고 말했다.

“폭력 시위가 많았던 90년대에는 경찰이 영화 ‘스타워즈’ 속 악당 캐릭터 ‘다스베이더’ 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어요.(웃음) 정말 다스베이더 같았다구요. 제가 고려대 어학원에서 공부할 때 매일 학교 앞에 경찰차가 나왔는데 그때 처음 최루 가스도 경험했어요. 정말 고통스러웠지요”

한국의 시위문화는 아직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는 “이제는 집회 현장에서 직접 생생하게 분위기를 느끼고 사진으로 기록도 남기고 싶다”며 “전공 때문에라도 가능한 많은 집회 현장에 나가볼 생각”이라고 했다.

실제 그의 개인 페이스북에는 서울에서 열린 다양한 집회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와 있다.
경상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헤르만스 교수는 지난해 11월 학생들과 진주시의회를 찾았다.
 
경상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헤르만스 교수는 지난해 11월 학생들과 진주시의회를 찾았다.
헤르만스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전공과 관련된 사진 뿐만이 아니다. 그의 한국에서의 관심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산과 사찰 사진이다. 그는 한달에 한두 번씩 시간을 내 친구와 등반에 도전한다.

“기독교 신자지만 자연스레 사찰의 풍경에 눈이 가요. 아마 불교 건축이나 색감, 그 속에 담긴 의미에 이국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독일에서 한국을 찾을 관광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경남의 명소를 묻자 쌍계사, 화엄사, 통도사, 해인사 등 유명 사찰의 이름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인터뷰가 진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한국의 전통 사찰에 매료됐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던 헤르만스 교수는 사찰명을 나열하던 도중 “웁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사찰에 갔네”라며 웃어 보였다. ‘전통 사찰’을 제외하고는 지리산 삼성궁, 거제 사량도와 포로수용소 방문과 고성 오광대 관람을 권했다.

“진주에서는 진주성과 진양호, 거기에다 소싸움을 추천하고 싶어요. 생각보다 재미있거든요. 타지에서 친구들이 오면 시내에 있는 전통 찻집도 종종 찾습니다”
평소 관심이 많던 오광대 공연 현장을 방문한 헤르만스 교수
 
1994년 부처님 오신 날 서울 봉원사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한 하이케 헤르만스 교수. 독실한 기독교 신자지만 지금도 그의 개인 페이스북에는 사찰에서 찍은 사진이 그득하다.

한국 여행을 하는 외국인 관광객 중 경남을 찾는 이는 여전히 적은 비중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버스를 통해 진주 유등축제로 올 수 있는 패키지 투어를 활성화하면 좋을 것 같아요. 외국인 대상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 패키지 투어는 존재하는데 경남이나 진주로 오는 건 잘 안 보이더라구요. 장거리 자전거 여행 코스를 활성화하거나 하이킹 코스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헤르만스 교수는 올해부터 경상대학교 여성연구소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틈틈이 짬을 내서 진주 유등축제를 비롯해 진주오광대·고성오광대, 남해 독일마을, 등산 포토에세이 등의 경남 이야기를 하나하나 올릴 계획이다.

외국인의 눈에는 여전히 한국은 서울 등 수도권 중심으로 비치고 있다. 그래서 남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지역의 이야기를 세계인에게 전하고 싶다는 그의 다짐이 새삼 눈길을 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헤르만스 교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 구석구석을 누빈다. 2016년 찾은 거창 국화꽃축제 현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헤르만스 교수.
     
한국어 실력을 더 키우기 위해 고려대 어학원에서 공부하던 1994년 방문한 제주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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