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삼현여자중학교 진주검무반 ‘해찬솔’
진주 삼현여자중학교 진주검무반 ‘해찬솔’
  • 백지영
  • 승인 2019.05.02 19: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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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절제의 미학, 진주검무에서 배우다”
K-POP에 익숙한 아이들도 진주검무 춤사위에 탄성
진주 고유 춤 배우고자 하는 학생 많지만 여건 열악
수백 년 이어져온 진주만의 고유 전통 문화 계승해야
삼현여중 “진주정신 녹아 있는 진주검무 계승 앞장”

“윗 사위 앞으로, 윗 사위 뒤로”

칼사위 찰랑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자진모리 장구 장단에 맞춰 서른 명의 여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양손으로 칼을 놀린다.

진주 삼현여자중학교 무용실에 한바탕 춤사위가 펼쳐진다. 이들이 추는 전통 무용은 국내에서 이어지는 궁중무용 중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진주검무다.

그 독창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난 1967년 우리나라 전통 무용 중 가장 처음으로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됐다.

현재 전해지는 진주검무는 뛰어난 춤 실력으로 궁중에 차출됐던 진주 권번 최순이가 낙향 후 진주 감영 교방청 기녀들에게 전승한 것으로 모든 기법이 과거 궁중에서 열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고 있어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정조 4년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진주성 논개 사당인 의기사 낙성식 잔치에서 본 진주검무에 감탄해 ‘무검편증미인(舞劒篇贈美人, 칼춤 시를 지어 미인에게 주다)’이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기생들이 줄을 서가며 배웠던 화려했던 과거도 한 때, 대다수의 전통 예술이 그렇듯 진주검무도 전승과 계승에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젊은 세대로 이어져야 하지만 빠른 음악과 자극적인 춤에 익숙한 요즘 같은 시대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2017년 제3회 경남 청소년 민속예술 축제의 모습. 진주검무는 칼날과 칼목이 분리돼 손목의 힘이 없어도 칼이 돌아가는 타 지역 검무와는 달리 칼날과 칼목이 직선으로 연결돼 손목의 힘이 중요하다.


양지선(47) 진주검무 이수자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에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요즘 젊은세대는 너무 우리 것을 몰라’라고 어른들이 말씀을 많이 하시지만 저는 그것보다 사회 구조와 교육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본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 국가의 춤을 초등학교 때부터 의무적으로 교과서에 싣고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음악 시간조차 서양악기 음악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국악이나 전통무용은 방과 후나 강사가 와서 편성해야 하는 구조죠”

그는 “어릴 때부터 우리 문화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성장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조금만이라도 교육과 구조의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만 기울인다면 전통문화의 계승과 전승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음식도 먹어봐야 자라서 그 음식의 맛이 달다, 짜다, 맛있다고 미각을 느끼듯 전통 춤이나 음악도 어릴 때 조금이나마 접해봐야 성인이 돼서도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삼현여중 문을 두드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수년 전에 한 학부모로부터 초등학교에서 진주검무를 배우던 딸이 중학교 진학 후에는 배우지 못해 아쉬워하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는 문의를 받았다.

그 역시 같은 문제를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길로 삼현여자중학교를 찾았다.

당시 교감이었던 최정대 현 교장에게 진주검무의 교육적 효과와 계승의 의의 등을 설명하며 동아리 개설의 필요성을 사정했다. 다행히 학교 측이 깊이 공감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결과 2016년 진주검무반 ‘해찬솔’이 탄생했다.

‘태양 아래에서 더욱 빛나는 소나무처럼 우리 전통문화와 지역문화를 굳건히 잘 계승하고 이어나가자’는 취지로 붙여진 이름이다.

 

2018 전통음악공연한마담에서 공연을 마친 후 삼현여중 진주검무반과 학교 관계자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2018 전통음악공연한마담에서 공연을 마친 후 삼현여중 진주검무반과 학교 관계자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지금은 부원 수가 1학년과 3학년을 포함해 30명에 달하는 인기 동아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현서(3년) 학생은 삼현여중에 입학하고 ‘검무’라는 단어를 듣자 왠지 멋진 느낌이 들어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다.

“막연히 생각해온 것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할 만해요. 진주검무 배운다 그러면 주변에서 멋지다면서 자기도 나중에 같이 배우고 싶다고 얘기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5년간 진주검무를 배워온 김효진(3년) 학생은 “요즘 만들어지는 춤은 사람들이 재창조한 것이지만 진주검무는 세월이 흘러감에도 우리 고유문화를 고스란히 살렸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최연주(1년) 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진주검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삼현여중에 와보니 동아리가 있어서 정말 좋았다”며 “국가무형문화재인 진주검무를 제가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진(39) 지도교사는 진주검무의 교육적인 효과를 묻자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자극적이고 빠른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에게 느림과 절제의 미학을 가르침과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문화, 지역문화 계승 유지에 기여하고, 자유학기제와 연계해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때부터 진주검무를 시작해 삼현여중에서 배움을 이어간 한 학생은 공연예술계 진학을 희망하며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 교사는 “처음 학생 모집을 시작할 때는 ‘안 모이면 어쩌지?’ 걱정을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반응이 좋았다”며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인지 올해로 조직된 지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비해 학교 밖에서도 굉장히 많은 상을 수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직 첫 해부터 전국 청소년 전통문화 경연대회 우수상과 경남 청소년 민속예술축제 금상을 거머쥔 데 이어 2017년에는 전국 무용 경연대회 1위, 2018년에는 개천예술제 전통공연대회 최우수상 등 굵직한 성과를 올렸다.

2017년 제3회 경남 청소년 민속예술 축제에서 공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이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삼현여중 진주검무반은 2018 전통음악공연한마당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물론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양 이수자는 “젊은 세대가 배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첫 학기는 재능기부식으로 무료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면서 “사용할 칼이나 한삼 같은 장비도 제가 개인적으로 구해왔는데, 다행히 이후에는 교육청 지원으로 인프라를 갖추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삼현여중 진주검무반 구성원은 1학년 21명, 3학년 9명으로 특이하게 2학년이 없다. 무용실 공간이 한정적이다 보니 3개 학년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물리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김 지도교사는 “진주검무반을 1학년 2학기에 진행될 자유학기제와 연계해 운영하면 학생의 진로탐색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1학년은 무조건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동아리 활동을 했던 현 2학년과 3학년 중에선 3학년생들이 진주검무반 활동에 더 적극적인 편이어서 3학년을 유지하게 됐다”며 “2학년은 내년에 의사가 있으면 진주검무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방침”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해 진주검무반 활동을 못하는 2학년 학생들은 김 교사를 볼 때면 “올해는 2학년은 왜 진주검무반 안 해요? 내년에는 할 수 있게 해 달라”며 아쉬워한다.

힙합이나 빠른 아이돌 음악이 유행하고 세계적으로 K-POP이 위상을 떨치는 시기, 양 이수자는 처음 진주검무반을 개설됐을 때 “과연 이 느리고 조금 오래된 춤들을 배우려 할까, 재미있어할까” 걱정했다.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배우는 아이들이 만족스러워해요. 3년 정도 저와 수업을 진행한 학생들은 전통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건 제가 계속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차원에서의 든든한 후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최정대(61) 교장은 “진주 정신이 녹아있는 진주검무를 우리 학교가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며 “진지하게 임하는 학생을 보면 정서적으로도 좋아 보이고, 우리 전통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앞으로도 진주검무반 활동을 적극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글=백지영기자·영상=박현영기자



다산 정약용, ‘무검편증미인’ 일부

(상략)
진주성 성안 여인 꽃 같은 그 얼굴에
군복으로 단장하니 영락없는 남자 모습
보라빛 괘자에다 청전모 눌러쓰고
좌중 향해 절한 뒤에 발꿈치를 들고서
박자 소리 맞추어 사뿐사뿐 종종걸음
쓸쓸히 물러가다 반가운 듯 돌아오네

(중략)
한 칼은 땅에 두고 한 칼로 휘두르니
푸른 뱀이 백 번이나 가슴을 휘감는 듯
홀연히 쌍칼 잡자 사람 모습 사라지니
삽시간에 구름 안개 허공에 피어났네

(중략)
너 이제 젊은 나이 그 기예 절묘하니
옛날 소위 여중 호걸 오늘날에 보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너로 인해 애태웠나
거센 바람 장막 안에 몰아친 걸 알 만하네



 
2017년 제3회 경남 청소년 민속예술 축제의 모습. 진주검무는 칼날과 칼목이 분리돼 손목의 힘이 없어도 칼이 돌아가는 타 지역 검무와는 달리 칼날과 칼목이 직선으로 연결돼 손목의 힘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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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숙 2019-05-16 16:05:53
진주정신 녹아 있는 진주검무 계승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릅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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