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3도 화상 딛고 일어난 제2의 인생
대영 씨는 나이 일곱 살 때, 불의의 사고로 3도 전신 화상을 입는 큰 사고를 당했다. 누군가가 버린 부탄가스가 폭발하면서 근방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놀던 대영씨가 큰 화상을 입었다. 3도 전신화상을 입은 그는 어릴 적부터 ‘넌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사고 이후 대영 씨의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화상으로 인한 흔적들은 깊게 남아 몇 차례의 대수술을 해야만 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자신감도 잃어갔다. 그를 쳐다보는 삐딱한 시선과 마주할 때마다 몸은 저절로 움츠려 졌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그는 반항기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평생 수술만 하고 살아야 되나,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되지?’라는 절망감이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어서게 한 것은 가족이었다. 하나뿐인 손자의 방황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할머니는 어느 날 새벽, 그를 깨워 진주 중앙시장에 데리고 갔다.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걸어가면서 본 새벽시장의 풍경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흥정을 하고,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풍경에 대영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대영 씨의 손을 꼭 잡은 할머니는 말을 꺼냈다.
“‘대영아, 새벽에 나오는 게 참 힘들지?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 사고로 지금처럼 손자 손을 잡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할머니는 지금 이렇게 손을 잡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구나”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전해지는 말에 대영 씨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 이후 대영 씨의 삶은 변했다. 자주 웃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대영 씨는 암벽등반을 접했다. 재활운동 때문에 진주시 청소년수련관을 자주 찾은 대영 씨를 눈여겨 본 하창은(48) 주무관이 그에게 암벽등반을 권했다.
하 주무관은 “늘 밝게 웃는 착한 학생이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상태라는 것을 처음에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대영 씨에게 암벽등반은 힘든 스포츠다. 주변에서는 며칠 안 돼 포기할 것으로 여겼지만 대영 씨는 완등을 위해 홀드 하나에 집중해서 암벽을 올라갈 때는 잡념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꾸준한 노력으로 진주시, 경남도 대표선수가 됐다. 그리고 사고가 난지 어느새 26년, 대영 씨의 나이도 33살의 나이가 됐다.
대영 씨의 삶도 참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트레이너를 맡고 있다. 청소년수련관이나 다른 곳에서 암벽등반을 가르치며 후배들을 키우고 있다.
‘어쩌면 오지 않았을 삶, 그래서 더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대영씨를 일으켜 세웠다. 암벽등반을 통해 소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대영 씨는 지금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선수시절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는데, 못다 한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이뤄내고 싶어요. 그래서 일도 더 열심히 할 예정”이라며 “암벽등반이 아직은 국내에서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좀 더 많이 보급될 수 있도록 이바지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임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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