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위해 헌신한 그라운드의 작은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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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민
  • 승인 2013.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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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축구열전> ‘탱크’ 조정현 진주고 감독

진주시 진주고등학교 축구부를 이끌고 있는 조정현 감독. 조감독은 사천 출신으로 90년대 중반  니폼니시 감독에게 발탁돼 올림픽 대표로 활약했다.오태인기자

 
 
저돌적인 돌파와 폭발적인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한 조정현(45). 그는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치고 1990년대 중반 유공, 부천SK(현 제주utd)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언제나 꾸준하고 기복없는 플레이로 팀 승리에 공헌했던 그를 그의 모교인 진주고등학교에서 만났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연습벌레’=어린 조정현은 축구가 하고 싶었다. 그냥 좋았다. 그러나 체격조건은 남들에 비해 뛰어나지 않았고 축구를 할 수 있는 여건도 쉽지 않았다.

동네에서 공을 차던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고향인 사천 용남중학교에서 골키퍼로 축구에 입문한다. 중3때 보다 몸에 맞는 필드플레이어로 전향한 조정현은 그때부터 기량이 급성장하며 축구 명문 진주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골키퍼로 1년간 생활을 했는데 성장이 부족했어요. 만세 골도 먹고 어려움이 있었죠. 필드선수로 바꾼 이후에는 짧은 기간동안 많이 발전돼 거제고, 대구공고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결국 진주고를 택하게 됐죠.”

고교 1학년 때부터 주전을 꿰찬 그는 왼쪽 풀백을 시작으로 미드필드, 사이드 어택커 등 공격포지션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축구에 재미를 느끼고 성장하던 그에게 첫 번째 시련이 닥쳐온다. “고 3때 진학이 걸려있었는데 청룡기 8강에서 골키퍼와 부딪히면서 무릎을 다쳤어요. 연골에 물이 차고 경기에 나설 없을 만큼 당시에는 큰 부상이었죠.”

결국 명지대, 한양대, 중앙대 스카우트 제의는 무사됐고 창단 2년차인 대구대학교로 진학한다. “첫 수술을 잘못하는 바람에 나중에도 힘들었지만 다쳤다고 마냥 있을 수 없었어요. 부상이 없는 부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지속했고 무릎이 괜찮아지면 드리블 연습에 몰입했죠.” 그렇게 어려울 때 자신을 위해 노력한 그에게 또 하나의 반전드라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노력으로 일궈낸 반전드라마=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대학내내 1경기 출전에 그쳤던 조정현에게 3학년 때 올림픽 대표로 차출됐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발탁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크라머감독이 선발전에 제가 뛰는 걸 보시고 눈여겨 뒀는데 독일 출장 후 돌아와보니 소집된 대표님에 제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감독님이 그러셨데요 그때 그 선수 데려오라고….”

보통 청소년 대표팀 멤버가 올림픽대표로 이어졌던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인 발탁이었다. 조정현은 대표님 합류 후 주전 신태용과 포지션이 겹쳤으나 당당히 주 포지션인 사이드 어택커로 나서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 그렇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1994, 1996년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1992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포항에 입단한 조정현은 트레이드를 통해 유공(현 제주utd)에 안착한다. 타고난 스피드에 저돌적인 돌파가 장기였던 그는 3년차인 1994년, 프로축구 29경기 출장에 7골 9도움을 기록하며 물오른 기량을 과시했다.

“유공시절 때 박성화 감독님도 있었지만 니폼니쉬 감독님이 기억에 남아요. 패스위주의 아기자기한 축구를 구사하셨고 한국식의 체력훈련도 많이 하셨어요. 그때 당시에는 풀타임을 소화에도 체력이 남아있을 정도로 축구가 재미있었죠,”

프로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에게 다시 무릎부상이 재발했고 그토록 원하던 일본진출도 구단의 반대로 좌절된다. “일본 산프레체에서 오퍼가 왔는데 시기를 놓쳤죠. 그래서 우연히 중국 펑안으로 옮겼는데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어요. 대체 용병신분이라 출전기회가 부족했고 현지 적응도 어려웠죠.” 중국 생활을 접은 그는 국내로 돌아와 2000년 포항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고교선수는 더이상 어리지 않습니다.”=은퇴 후 조정현은 노수진 감독의 제의로 영등포공고 코치로 지도자생활에 접어든다.

“대표팀, 유공시절 때 크라머, 니폼니시 감독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외국인 감독 밑에서 생활을 한것이 기억에 남고 두분의 스타일대로 가르치고 있죠. 아직 프로팀 욕심은 있지만 시기가 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기회가 된다면 한번 쯤은 마지막으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부천SK 수석코치를 지낸 그는 2003년 12월부터 모교인 진주고에 둥지를 틀고 후진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얼마 전 진주고 출신 윤일록이 동아시아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는 등 졸업생들의 활약을 들을 때면 그의 마음도 흐믓해진다. “졸업생들 가운데 대표선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윤일록 같은 경우는 학교 때 부터 생활면에서도, 능력면에서도 잘했고 그때부터 국가대표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조정현은 끝으로 제자들에게 애정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고등학교 선수라면 성인이라고 봐야해요. 어린선수들도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하고 마인드도 자신이 어리다는 생각을 버려야죠. 외국에는 19세면 벌써 프로에서 활약을 하고 있거든요. 어리다는 생각을 계속하면 성인무대에 가서라도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죠. 어린선수들이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었으면 해요.”


<조정현 프로필>
출생= 1969년 11월 12일 경남 사천
학교= 사천용남중-진주고-대구대학교
선수경력= 올림픽대표(1992), 국가대표(1994, 1996), 유공·부천SK(1993~1998)
지도자경력= 영등포공고 코치(2002~2003), 부천SK 수석코치(2003), 진주고등학교 감독 (200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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