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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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2.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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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구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27년 전 아내를 지금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시 나는 30이 넘은 노총각으로 별로 결혼생각이 없었다. 그 당시 옆자리에 있던 여직원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좋은 아가씨가 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4월의 어느 날 단발머리의 예쁜 아가씨가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아가씨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설렘을 느꼈다. 오후쯤에 그 아가씨가 “잘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상큼한 꽃내음을 풍기며 그 아가씨가 자리에 앉는 순간 ‘운명이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다. 예쁘고 성격도 좋고 일까지 잘하는 그녀가 오자마자 침침했던 사무실의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다. 옆자리에 앉다보니 업무를 모르는 그녀가 나에게 묻기도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녀가 오고 나서부터 나의 직장생활은 항상 즐거웠다.

당시 나는 방을 하나 구해놓고 밥을 사먹고 있었는데 내가 사는 방이 보고 싶다며 가끔 그녀가 내 자취방에 놀러 오곤 했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 방에는 책이 가득하게 쌓여 있었는데 책을 가까이하는 나를 그녀는 참 좋아했다. 사무실에서 칭찬이 자자하던 그녀를 당시의 보훈청장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의 맏며느리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청장님의 아들은 인물도 잘 생기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 중인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었는데 아내는 나를 택했다.

지금도 가끔 그 당시의 청장님을 만나 술자리를 갖게 되면 꼭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쑥 구렁이 꿩 잡아먹는다고 하더니만 자네 동작 참 빠르던데”라고 하면서 “부인 잘 있나”고 안부를 묻곤 한다. 미스 보훈청으로 불렸던 아내는 지금도 매일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동창회 부부모임에 참석해도 아내가 제일 예쁘고 여성스럽다고 친구들이 몹시 부러워한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아내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결혼 초에는 사소한 일로 종종 싸우곤 했지만 이젠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신뢰가 아닌가 한다. 부부는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가. 혹시 마음이 상한 일이 있더라도 연애시절 서로를 그렇게 사랑했던 그 마음으로 이해를 하게 되면 싸울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고 지쳐서 곤히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참 아프다. 지금은 아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없이 감사하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넥타이를 잘 고르지 못하는 나에게 “왜 그렇게 색에 대한 감각이 없느냐”라며 넥타이를 골라주면서 “잘하는 것이 도대체 없다”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면 왜 잘하는 것이 없는 나하고 결혼했냐”라고 물으면 아내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불쌍해서…”라고.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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