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역사는 진주에 무엇을 남겼나 [11]현대 차 문화 발상지 진주
천년 역사는 진주에 무엇을 남겼나 [11]현대 차 문화 발상지 진주
  • 임명진
  • 승인 2024.11.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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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차 마시는 문화 현대에 되살린 진주 차인들
진주의 숨은 매력 중 하나는 다른 도시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전통찻집이 곳곳에 포진해 언제든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진주에는 전통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진주는 차를 사랑하는 차인(茶人)들의 단체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결성된 곳이다. 진주의 차인들은 1969년 ‘진주차례회’를 결성하고, 1981년에는 진주 차인들이 주축이 돼 촉석루에서 5월 25일을 ‘차(茶)의 날’로 제정했다.

이동수 진주연합차인회 회장은 “보통 문화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파되는 데 반해 차 문화는 오히려 진주에서 서울로 퍼져 나갔다”라고 말했다.

 
 
국내 첫 공식 차회 단체인 진주차례회(현 진주차인회)와 일본 나고야 차도회는 한일 차문화 교류회를 열고 교류를 이어갔다. 사진은 1970년 첫 한일 교류회 당시 다솔사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 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효당이며 왼쪽 안경 쓴 사람과 여성은 나고야 차인회 요시다 회장 부부.
◇진주에서 시작된 차 문화 부흥

차를 마시는 문화는 보통 개인이 가정에서, 사찰에서 스님들이 심신 수련을 위해 즐겨 마시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 기원을 찾아보면 우리 역사에서 오래전부터 차를 즐겨 마셔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인도에서 처음으로 차 씨앗을 가져왔다는 설도 있고, 역사서인 고려시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는 ‘신라 흥덕왕 때 대렴공이 당나라에서 차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 화개동에 최초의 차나무를 심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진주의 차인들은 1981년 5월 ‘차의 날’을 선포하면서 하동의 쌍계사 부근에 하동이 우리나라 차의 최초 재배지라는 대렴공 추원비를 건립했다.

고려시대에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 민간에까지 널리 퍼졌다고 전해진다. 한때 동네마다 흔했던 차와 커피를 마시는 ‘다방’이 고려시대 때 국가적으로 차와 술 등 다례 행사를 주관하는 관청인 ‘다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유교가 지배 사상으로 확립되고 불교가 탄압을 받으면서 차를 마시는 문화도 침체에 빠진다.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 등의 차인들이 활동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커피 문화의 유입과 함께 전통 차 문화는 일부 개인과 사찰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런 차 문화가 오늘날 다시 각광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 차인들의 역할이 컸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솔사의 효당 최범술과 아인 박종한, 차농 김재생, 은초 정명수, 아천 최재호, 경해 강명찬 선생, 무전 최규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잊혀 가던 차 문화 부흥을 위해 전국 최초로 차인들의 단체인 ‘진주차례회’를 결성하게 된다.

 
다솔사의 차역사를 알리는 안내판
차밭을 배경으로 한 다솔사 전경.
◇차 문화에서 드러난 독특한 진주다움

진주의 차인들은 차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화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진주차례회 창립회원인 아인 박종한 선생은 대아 중·고등학교, 강명찬 목사는 경해 여자중고등학교, 선명여고, 최재호 선생은 삼현 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한 교육자로서 명성이 높은 이들이다.

심재원 경상국립대 한국차문화연구원 부원장은 “진주는 차 문화에 있어 다른 지역과는 다른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학교에서 최초로 차 예절 교육을 시행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차 교육을 접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차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진주의 차인 저변 확대에도 이바지했다.

실제 진주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30여 개의 차인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차인 단체가 하나로 뭉쳐 ‘진주연합차인회’가 출범했다. 이들 단체는 매년 ‘차의 날’을 전후해 다양한 차 행사를 함께하고 있다. 수십 개의 차인 단체들이 연합을 이뤄 왕성하게 활동하는 곳은 전국에서 진주가 유일하다.

소속 단체가 다르면 함께 모이기가 어려운데, 이러한 진주의 독특한 문화에는 옛 진주목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심 부원장은 “진주의 차인들이 함께 모이고, 한국 차 재배의 시작이 지리산이라는 기념비를 건립한 것은 차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확장된 진주의 범위를 하동과 사천 등을 포함하는 옛 진주목 시대의 의미와 결합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한민국 문화도시에 선정된 진주시가 신청한 주요 콘텐츠 중에는 ‘차 문화 명상길’이 포함돼 있다. 차 재배지인 하동과 사천 다솔사, 진주를 잇는 옛 진주목의 관점에서 서부경남 차 문화 벨트권을 연결하는 공동 상품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진주 지하상가에 문을 연 ‘진주 차문화 홍보관’에서는 지난 1일 오후 4시부터 첫번째 차문화 세미나가 열렸다.
◇차 문화 열기 대학가로 확산

오늘날 전국 최초의 현대적 의미의 전통찻집 1호는 지금의 대안동, 차 없는 거리에 1979년 문을 연 설록원을 꼽는다. 설록원을 시작으로 진주에는 여러 찻집이 생겨나 지금까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덕환 경상국립대 진주학연구센터장은 “차 문화에 관한 관심은 기성 세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커피를 즐겨 찾는 청년층도 요즘 차에 대한 관심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경상국립대와 진주교대 등 지역 대학가에는 차 동아리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 차 동아리는 신입 회원 모집시 많은 지원자가 몰려 차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상국립대의 경우 지난 해 무려 100여 명의 신입 회원이 찾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진주의 차 문화 열기는 2019년에는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 석사과정으로 한국 차 문화학과 신설로 이어졌다. 김 센터장은 “대학 통합 이후 지금은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에 차 문화 전공 석·박사 과정을 만들어 올해 처음 신입생을 뽑았는데 박사 과정 차 문화 전공에 8명이 입학했다”면서 “차에 관한 관심이 차츰 학문적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역의 차 문화 열기를 바탕으로 진주시와 진주연합차인회는 ‘전국 차식(茶食) 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지역 차인들은 “진주가 한국차 문화 수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차문화 센터나 차 문화 박물관 등의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 차인들이 모이는 도시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차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 상품 개발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이 시점에 지난 1일 진주시가 도심 지하상가에 ‘진주 차문화 홍보관’을 개설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동수 진주연합차인회 회장은 “진주는 차 문화가 발달했지만 현장에서 이를 홍보하고 체험하는 장소가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상설 차 문화 홍보관이 개설된 것은 앞으로 진주가 차 문화 수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초석을 다지는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글=임명진기자·사진=김지원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진주차례회 중심 인물 4인. 왼쪽부터 아인 박종한, 의재 허백련, 효당 최범술, 차농 김재생.
■효당 최범술과 다솔사

효당 최범술은 1916년 다솔사로 출가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경에 불잡혀 고초를 겪었다.

다솔사 녹차밭을 가꾸면서 1960년대 이후 전통 차 문화 복원과 대중화에 힘써 왔다. 1973년에 출간한 ‘한국의 차도’에서 “차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기호품이며 때와 장소, 남녀노소, 신분, 직업과 관계없이 누구나 영위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아인 박종한 탄신 100주년

진주의 사립학교인 대아 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지냈다.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을 계승한 오민 교육을 창설하고 대아 중·고등학교에서 최초로 차 예절 교육을 시행해 주목받았다. 내년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차농 김재생의 차나무 연구

경상국립대학교 임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진주에 최초의 차밭을 조성하는 등 차나무의 체계적 연구에 매진했다. 일본 차도회를 비롯한 대외 친선교류의 발판을 놓았다.

 
다솔사 차밭
효당 최범술이 펴 낸 국내 첫 차 관련 유인물 ‘한국차생활사(1966, 24쪽)’와 한국의 차도(1975).
 
경의잔, 아인 박종한 선생이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 정신을 찻잔에 구현해 만들었다. 박종한 선생은 경의사상을 바탕으로 경의차도교육을 대아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정서안정과 인성교육에 적용했다. 이는 한국차도교육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경의잔, 아인 박종한 선생이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 정신을 찻잔에 구현해 만들었다. 박종한 선생은 경의사상을 바탕으로 경의차도교육을 대아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정서안정과 인성교육에 적용했다. 이는 한국차도교육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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