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어버이의 각광
[특별기고]어버이의 각광
  • 경남일보
  • 승인 2015.05.0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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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경상남도교육감)
박종훈 (경상남도교육감)
 
‘서 말 세 되’, ‘여덟 섬 너 말’. 무엇의 부피를 잰 것일까요? 하나는 먹는샘물 서른세 병이고, 또 하나는 한 말을 열다섯 되로 보아 천이백마흔 병입니다. ‘부모은중경’에 어머니가 자식을 낳을 때 흘린 피와 세 살까지 먹인 젖의 양입니다. 낳아 주신 은공을 수치로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누구라 할 것 없이 어머니의 몸을 축내며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뱃속에 들었던 열 달과 품에 안겼다 무릎 위에서 놀고, 기다가 일어서서 걸음을 배우고, 집에서 점점 멀리 나가 세상의 바람을 맞으며 제 삶을 넓혀 갈 때까지의 그 긴 시간을 놓고 보면, 땀은 또 몇 섬이 될지, 걱정과 한숨을 되로 담아 보면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버이가 바친 육체적·경제적 수고로움을 자식은 마땅히 새겨야 하지만, 보은을 해야 하는 까닭이 그것 때문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어버이가 가족사를 이끈 주인공이었다는 데서 찾고 싶습니다. 가족사라는 아름드리 나무의 줄기는 부모님이고, 자식들은 가지입니다. 비바람 거센 날의 흔들림도 있었고, 향기 뿜는 봄날도 있었습니다. 가슴이 벅찼던 날도 있었고, 절망에서 허우적거리던 날도 있었습니다. 집안에서 가족의 역사는 이렇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 켜켜이 쌓인 기억들이 자식들의 지난 인생이고, 앞으로 펼쳐갈 인생의 뿌리입니다. 자식들의 소설은 어버이의 소설에 이어지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그 소중한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돌아가신 제 어머니는 자식을 여덟이나 두셨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는 도대체 몇 말의 피와 젖을 빼앗았던 것일까요. 어머니는 그 많은 가지를 뻗어 놓으시고, 우리 자식들이 빛나는 잎사귀와 향기로운 꽃송이, 알찬 열매를 주렁주렁 다는 꿈으로 한평생을 사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루만 꼬박 앓으시고 돌아가셨으니 남들은 큰 복을 받으셨다 하지만, 저에게는 사라지지 않을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를 맞고 귀가하신 아버지로부터 보일러가 고장 났다는 전화를 받고, 수리를 위해 갔다가는 고쳐 드리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차가운 방에서 감기가 심해져 예기치 않게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 존경심은 저를 언제나 가슴 벅차게 합니다. 20년 동안 시조창을 갈고닦으셔 마침내 명창 칭호를 받으신 것이 저의 긍지로 자리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저의 인생 소설에도 어머니·아버지가 써 주신 이야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각광(脚光)이란 무대 바닥에서 배우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불빛입니다. 주인공은 각광을 받으며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펼쳐 갑니다. 그때 배우의 얼굴은 환하게 빛납니다. 그러나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각광을 받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버이는 자식에게 각광을 비추어 주는 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처럼 양친을 여읜 자식이라도 어버이는 가슴속에 살아 계실 것입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그칠 줄 모르고 빛을 내는 그 각광을 받으며 자식들은 남은 소설을 그려 낼 것입니다. 어버이날입니다. 글썽이는 눈물이 각광에 반짝입니다. 
박종훈 (경상남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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