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광풍루' 이건(移建)이 안타까운 이유
함양 '광풍루' 이건(移建)이 안타까운 이유
  • 이용우
  • 승인 2013.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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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기자
함양군이 끝내 600년 전 건립된 광풍루(光風樓) 이건 사업을 단행했다. 군은 경상남도 유형무형재 제92호 안의 광풍루를 완전해체 후 옆으로 20m, 뒤로 10m 옮기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광풍루는 가람막에 가려 주춧돌만 남은 데에서 누각은 완전 해체된 상태이다. 취재 중 안타까운 것은 광풍루 이건(移建)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행정당국과 주민들의 무관심이었다.

먼저 군은 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 한 번 없이 공사를 추진해 많은 문화재 관계자와 군민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았다. 언론에서 문제점이 부각되자, 군은 부랴부랴 관할 면 지역에서 이장단을 모아 공청회라는 명목으로 사업설명회를 가진 게 다였다. 왜, 문제가 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민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걸까.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아직 계도의 대상인지, 그저 무식하고 사리에 어둔운 몽민(蒙民)에 불과한 지 이참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주민들 또한 마찬가지. 광풍루는 조선시대 조정의 명에 따라 안의현감이 부임할 때 가장 먼저 맞아들인 장소였고,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는 중·고등학생들의 임시교실로 사용하는 등 깊은 역사 속에서 이 지역 주민들의 자존감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그럼에도 광풍루 이건의 불합리함을 목청껏 외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다못해 광풍루 이건에 대한 반대의견이 담긴 현수막조차 붙이지 못했으니, 지역민들이 보여준 무관심함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주민들은 연암문화제나 장터에 삼삼오오 모여서 광풍루 이건의 부당함은 설파했지만, 몸소 뜻을 펼쳐 보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광풍루는 한헌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과 함께 우리나라 동방오현(東方五賢)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일두 정여창 선생이 안의현감을 지냈던 곳이고, 군자정(君子亭)의 이름도, 지곡의 개평마을도 일두 선생으로 인해 유래된 것이다.이뿐이랴. 조선 최고의 학자요 문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연암 박지원이 그 치적을 쌓고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실천적 사상을 쌓았던 곳이 안의현감(安義縣監) 시절이었고, 조선 정조 임금의 사랑과 원망을 동시에 받을 때마다 광풍루에 올라 민심을 살피지 않았던가.

7일 함양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떨어진 빗방울은 광풍루 주춧돌에서 한참을 머물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강이라 이름 붙였던 금호강(錦湖江) 어귀로 떨어졌다. 더 이상 눈물이 빗물 속에 묻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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